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3월 넷째주 신규 실업급여 신청건수는 664만8000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한 달 가량 먼저 시작된 한국의 2월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 수는 10만7000건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영향이 거의 없었던 1월(17만4000건)보다도 훨씬 적었다. 사업장 강제 셧다운(업무정지) 여부 등 한미 간의 방역 체계 차이에 따른 이유도 있지만 지나치게 느슨한 한국의 통계 시스템이 산업현장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휴업·휴직·실직으로 인한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데 정작 통계에 반영되지 못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크게 △집계와 발표 시차 △통계표본의 한계 △노동시장 경직성 등을 꼽는다.
주간 단위로 실업급여 신청 집계를 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월 단위로 조사해 다음 달에야 통계를 발표한다. 그 마저도 해당월에 실직한 수치가 아니다. 고용보험 상실 신고, 즉 실업급여 신청은 실직이 발생한 날이 속한 다음달 15일까지 신고하도록 돼있어 통계 발표시점 기준으로 보면 전전월에 실직한 경우가 상당 부분 포함된다. 가령 1월 초에 실직했지만 근로자와 사업주 중 어느 한 쪽이 2월15일에야 신고했다면 이 근로자의 실직 기록은 3월 발표 때나 확인할 수 있게된다는 얘기다. 코로나19에 대한 국가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2월 23일 이후 발표된 실업급여 통계에서 신규 실업급여 신청자가 10만명 선에 그친 이유다.
정부가 각종 통계를 작성하는 이유는 현장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정책 기초자료로 쓰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1995년 고용보험 도입 이래 유지해온 통계시스템 개선을 위한 논의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자영업 비중이 높고 실업급여 지급 절차도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적절치 않다"며 "발표는 월 단위지만 상시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은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 표본이 충분하지 않은 점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실업급여 신청자와 지급액을 알 수 있는 고용부의 '고용행정 통계로 본 월별 노동시장 통계'는 고용보험 전산망을 활용한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의 취업 또는 실업 상태만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2월 기준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380만명이다. 같은 달 기준 경제활동인구(2799만명)의 절반 수준이다. 자영업자는 물론 대리운전 기사, 보험 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보니 이들의 실업 또는 폐업 상황은 집계가 불가능하다.
해고 절차가 복잡한 국내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코로나19로 인한 한미 간의 실직자 통계 차이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직원을 줄이려면 한달 전에 미리 해고를 예고해야 하고, 경영난으로 직원을 내보낼 때도 상당기간 경영난이 지속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반면 미국은 별도의 경영상 해고와 관련한 제한이 없고, 대량 해고 시 행정기관에 통보만 하면 된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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