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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금(金)겹살 됐다고?

입력: 2019- 05- 31- 오전 12:46
© Reuters.

사진=연합뉴스

“삼겹살이란 무엇인가.”

한국인들에게 삼겹살은 ‘소울푸드’라고 한다. 그만큼 친숙한 음식이다. 기자에게는 무너진 벽이다. 벽이 있는 사람 즉 가깝지 않은 사람과는 먹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색함이 가시지 않은 소개팅 남(男) 등. 마음을 나눌수 있는 가족, 친한 친구, 동기들과는 먹는다.

삼겹살 얘기를 하려는 이유는 요즘 ‘금(金)겹살’,‘가격 폭등’ 이런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울푸드니 만큼 관심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사실 욕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금만 오르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이하 돼지열병) 때문에 올랐다고 쓰고 싶었다. ‘돼지열병 때문에 해외에서 돼지가 많이 죽었다. 공급이 감소하니 가격이 오른다.’ 딱 떨어지는 논리는 너무 쉬웠다. 하지만 그럴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실과 다르니까. 삼겹살 가격 탐구를 시작한다.

◆폭등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삼겹살 가격이 올랐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예스’다. 공신력 있다고 하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공시를 살펴봤다. 지난 29일 100g(중품 기준) 당 2020원이었다. 소매가격이다. 지난 4월 1875원에 비해 7.7% 오른 수준이다. 작년 5월 평균보다도 8.4% 높다. ‘엄청나게 올랐네’라고 하기엔 왠지 찜찜하다. 돼지열풍이 영향을 미쳤다면 이 정도가 아니라 20%, 30% 올라야 하는 것 아닐까.

가격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비교의 대상과 기준이다. 우선 4월보다 5월이 일반적으로 비싸다. 전문용어로 ‘계절적 요인에 따른 가격상승’이라고 표현한다. 놀러들 많이 가니까. 해변과 펜션, 콘도에 진동하는 삼겹살 냄새를 다들 기억하실듯.

작년 5월보다 비싼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반문에도 대비해뒀다. 가격을 볼때는 어떤 해에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1999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1.3%였다. 마지막 두자릿수 성장률이다. 엄청나게 경제가 좋았을까. 아니다. 직전 해 외환위기로 마이너스 5.5%를 기록했다. 유식한 말로 기저효과라고 한다.

다시 삼겹살 얘기. 올해 5월 평균은 1990원이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높지만 작년에는 돼지고기 값이 폭락했다. 해외에서 수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펼쳐서 봐야한다. 예년에는 어때는지. 5월 평균은 2017년 2192원, 2016년 1962원, 2015년은 2124원이었다. 설명 생략.

◆축산농가의 이상한 보도자료

이상한 일은 또 있다. 금겹살 얘기가 나오지만 농가는 죽겠다고 한다. 그 이유도 가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올해 국내산 삼겹살 평균 가격은 중품 기준 100g당 1988원이다. 폭락했던 지난해보다 3%밖에 높지 않다. 뭐 비슷한 수준이다. 심각한 건 목살, 안심 등을 포함하면 돼지고기 전체 도매가격은 작년보다 싸다. 냉장 고기는 작년 이맘때보다 10% 정도 낮다. 농가들이 오죽했으면 “돼지열병 때문에 돼지고기 가격 올랐다는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보도자료를 냈을까. 한 식품업체 매입 담당 직원은 현재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금 농가들은 돼지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지 않고 냉동을 하고 있다. 오르면 팔려고.” 냉동삼겹살의 유통기한은 2년이다.

여기서 잠깐. 소비자들의 체감하는 가격을 빠뜨릴 수 없다. “요즘 좀 오른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 있다. 지난 1~2월 돼지고기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키우는 돼지 수가 크게 늘었고, 수입도 늘어난 탓이다.

통계를 한가지만 갖고 얘기하면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엄청나게 사들이는 식자재 공급업체가 구매한 도매가격을 받아봤다. 5월 평균 냉장 삽겹살 가격이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낮았다. 수입산도 비슷하다. 한국농수산식품 유통공사가 집계한 5월 평균 삼겹살 거래 가격은 100g 당 995원. 4월보다 2원이나(?) 올랐다. 작년 5월(1065원)보다는 내렸다. 29일 하루만 놓고 보자. 1005원이었다. 한달전(987원) 보다 비싸다. 하지만 돼지열병 때문에 수입이 급감해 가격이 급등했다고 하기에는 좀 머쓱하다. 이런데 돼지열병으로 가격이 급등했다고?

◆돼지열병 삼겹살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그 무섭다는 돼지열풍은 삼겹살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몇가지 이유가 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 공급이 넘쳐난다. 돼지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의 한봉희 연구원에게 물었다. 그는 “작년 국내 돼지 생산량은 93만9000t으로 사상 최대였고, 돼지고기 수입도 2016년에 비해 26%나 늘었다. 지금은 재고가 많다”고 답했다. 도매상 냉동고가 꽉 차 있다는 현장의 소리도 들린다. 재고가 많은 상태에서 공급이 더 늘어나니 가격은 오를 수 없다. 다음달이면 돼지 수가 더 증가한다. 최대 1155만 마리가 한반도에서 자라게 된다.

여기에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덜 먹기 시작했다. 올 1~4월 가구당 돼지고기 평균 구매량은 1.9㎏으로 1년 전 1.94㎏보다 줄었다. 다른 먹을 게 많아진 영향이겠지. 아 여기서 잠깐 52시간 근로제로 회식을 안해서라는 상상도 해봤다. 그러나 상상이 아니라 실제 영향이 있다고 한다. ‘기승전 52시간’이라고 욕을 먹겠지만 영향이 있는 것을 어찌할까. 돼지고기 자급률도 비교적 높다. 대략 70% 안팎이다. 국내 공급으로 국내 수요를 대충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ASF는 왜 무서운가

이쯤에서 ASF에 대해 설명을 하고 가자. 무서운 병이다. 바이러스성 출혈성 열성 전염병이다. 사람은 안전하다. 돼지과만 걸린다. 치료제나 백신은 없다. 열병에 걸린 돼지는 사료를 먹지 못한다. 피부에는 푸른 반점과 충혈이 생긴다. 치사율은 100%, 걸리면 다 죽는다. .

진짜 무서운 이유는 또 있다. 이 바이러스는 엄청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열병에 걸린 돼지고기를 원료로 중국에서 육포와 순대를 만들었다고 치자. 이속에서 바이러스는 스며든다. 얼린 상태에서 1000일, 소금으로 고기를 절여도 1년 이상 살아 남는다. 중국산 수입 순대를 어떤 가정에서 사 먹는다. 좀 남아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다. 이 쓰레기가 돼지사료로 쓰이면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어진다. 한마리가 감염되면 무섭게 퍼진다. 그래서 농가들이 “잔반돼지 사육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심각하다. 전세계 돼지의 절반(8억5000만 마리)이 사는 중국에서 ASF가 퍼졌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1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지난달 중국 돼지고기 가격은 작년보다 14.4% 뛰었다. 세계 축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5월 기준 미국과 EU에서 돼지 도매가격은 전년대비 16-20% 가량 올랐다.

◆방심은 금물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북한까지 ASF가 내려왔다는 얘기도 있다. 철통방어를 하지 않으면 소울푸드가 진짜 금겹살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당장은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보고 있다. 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농업관측본부는 6월 전국 돼지고기 도매가격이 1㎏당 4400~4600원으로 지난해 5192원에 비해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떨어질 것이라 보는 이유는 앞서 설명했다. 공급과잉.

하반기부터는 분위기가 약간 달라진다. 국제 가격이 올라 수입이 감소하면 가격이 소폭 상승할 것이라고들 한다. 내년에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는 작년 여름 너무 더워 돼지들이 새끼를 제대로 갖지 못했고, 설사병도 돌았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수요처이자 돼지 산지인 중국도 문제다. 돼지열병이 더 이상 번지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깨끗한 돼지를 길러 식탁에 올리기까지 대략 1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공급 공백을 피할 수 없다.

기사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30일 거래 가격이 공시됐다. 1863원. 어제보다 또 떨어졌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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