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저자의 개인 견해로 로이터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울, 9월9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또 음모론이다. 3개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이야기다. 최근 한 두달 새 벌써 두 번째다.
처음엔 CD 금리가 내려갈 때 터지더니 이번엔 CD 금리가 올라가니 나왔다.
지난 7월 말 KEB하나은행이 3개월 CD 금리를 기준금리(1.50%)보다 낮은 수준에 발행한 이후에 의혹을 제기하는 딜러들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자금 사정이 빠듯한 7월 말일에 3개월 CD가 발행됐는데 받아 간 곳들이 모두 증권사들이었다는 게 이슈가 됐다.
스왑 포지션과 연관됐거나 CD 금리를 조달 기준으로 삼는 증권사들이 CD 금리를 낮춰 자기들 조달금리까지 낮추려 하지 않았겠느냐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다.
지난주에는 CD 고시 금리가 사흘 연속 상승한 게 큰 이슈가 됐다. 3개월 CD 금리는 4일에 1bp 상승한 데 이어 5일에 3bp 올랐고, 6일에 다시 1bp 올랐다. 5일 시장에서 잔존 만기가 83일인 국민은행 발행 CD가 1.60%, 1.61%에 거래된 게 결정타였다.
시장에선 증권사 몇 군데 팀이 이자율스왑(IRS) 단기 테너를 공격적으로 페이하고, 이 포지션의 성과를 위해 CD 경과물도 거래시킨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최근 CD 금리 변동폭이 커지다 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자주 들린다. 이전에는 1년 동안 1bp 움직이기도 어려웠던 3개월 CD 금리가 최근 들어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다 보니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딜러들이 늘고 있다.
CD 금리 음모론은 얼마나 실체 있는 이야기일까?
▲발행물 시장·예담 ABCP 보면 과하지 않은 CD 고시금리 변화
CD 금리 음모론이 유효하려면 3개월 CD 고시금리의 변동을 유발한 거래가 통상 수준보다 과도하게 높거나 낮은 금리에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
7월 말에는 시장 금리가 워낙 빠르게 추락하다 보니 그나마 상대 금리가 높아 보였던 CD로 자금 수요가 몰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CD 발행에 몰린 자금만 수천억원이었던 데다 결과적으로 8월 한 달간 시장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당시 거래가 과하지 않았음이 결과로 인정됐다.
지난주 CD 금리 상승을 촉발한 경과물 거래는 어떨까? 잔존 만기 83일짜리 CD가 1.60%에 거래된 건 과했던 것일까?
발행물 시장을 보자.
당시 일부 시중은행이 6개월물 1.56~1.57%, 1년물 1.58~1.59%에 시장 태핑을 했지만 수요를 찾지 못했다. 단기 자금시장이 빡빡하다는 인식 속에 CD 발행이 원활치 않던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글로벌 불확실성 요인이 희석되면서 통안채 등 단기물 금리도 큰 폭으로 오르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최근 단기자금시장 사정을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예금담보 ABCP 금리의 움직임이다. 8월 초까지 1.40%대 초반에 거래됐던 예담 ABCP 금리가 불과 20여 일 만에 20bp 가까이 올라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은행 자금 담당자들이 여름휴가를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연말 준비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무엇을 준비하는가?
바로 금융당국이 내년 1월1일부터 적용하는 새로운 예대율 규제다. 올해까지는 가계 대출이든, 기업 대출이든 관계없이 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100%를 초과하면 대출 취급이 제한되지만, 내년부터는 가계대출 가중치가 15% 상승하는 반면 기업 대출 가중치는 15% 낮아진다.
현재 예대율이 100%에 육박하는 은행의 경우 내년에 새로운 예대율이 적용됐을 때 가계대출 비중에 따라 100%를 넘을 수도 있게 된다.
이런 은행들이 예대율을 낮추는 방법은 저원가성 예금을 확대하거나 가계대출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가계대출을 줄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금을 늘리는 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연말로 갈수록, 내년 새 예대율 적용 시점이 다가올수록 은행들의 '비율 맞추기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빨리 예금을 늘리는 게 비용도 절감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KB국민은행이 먼저 치고 나가자 다른 은행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쫓아갔고 이게 예담 ABCP 금리 급등을 초래한 것이다.
현재 1년 만기 기준으로 마지막으로 거래된 예담 ABCP 금리가 1.60%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1.62~1.63% 정도로 봐야 한다. 경과물 CD 금리가 1.60%에 거래됐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 CD 시장성·투명성 회복 진행 중..과도한 음모론은 자제해야
그렇다 해도 누가 CD 거래를 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특정 기관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CD를 몇백억원 거래시켜 IRS 금리를 좌우한다면 문제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거래를 했든 그 금리가 적정 수준과 크게 괴리를 보이지 않는다면 무작정 의혹을 제기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 팔아보려고 하는 곳과 사보려고 하는 곳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격이 형성된다. 이 가격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금리 수준에 대해 의심이 든다면 호가를 대볼 일이다. 금리가 과도하게 높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매도가, 과도하게 낮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매수가 붙을 것이다. 그렇게 유동성이 생기고 가격이 만들어진다. 다른 채권 금리가 다 올라가고 있는데 CD니까 금리가 움직여선 안 된다는 논리도 이상하다.
돌이켜 보면 CD 시장이 고사한 데에도 이 같은 의심병이 크게 작용했다. 워낙 많은 돈이 CD 금리 1bp에 좌우되다 보니 CD가 한 번 발행될 때마다 시장이 시끄러워졌고, 그때마다 시중은행들은 더 몸조심하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의 CD 금리 담합 조사 이후 은행의 CD 발행 기피 현상은 더 심해졌고 발행을 해도 전일 민간평가사 금리 수준에서 기계적으로 발행 금리를 결정했다. 그 결과 CD 고시금리는 기준금리 조정이 없으면 1년 동안 1bp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 됐다.
CD 고시 증권사들도 워낙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등쌀에 CD 발행금리만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당일 CD 발행 및 거래내역, 은행채 등 유사 채권 수익률을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고시 금리를 보고하라는 금융투자협회 모범규준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CD 금리를 한 번 조정할 때마다 폭발하는 항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던 민간평가사들도 발행 금리만 반영하는 시장 분위기에 영합할 수밖에 없던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예대율 산정 시 원화 시장성 CD 잔액을 예수금의 1%까지 인정받을 수 있게 한 지난해 금융위원회의 감독규정 개정 여파다. 실제로 감독규정 개정 이후 CD 발행 잔액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6조7천억원이었던 CD 발행 잔액은 올해 3월 말 11조3천억원 수준까지 늘었고, 6월 말에는 14조3천억원까지 확대됐다.
시중은행들은 이제 예전처럼 눈치를 보면서 CD를 발행하지 않는다. 수요만 있으면 CD를 발행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CD 발행 잔액이 늘어나니 유통시장에서의 거래량도 늘어난다. 물론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유통량이 미미한데 CD 고시금리에 미치는 영향은 커 보이니 이해관계자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CD 고시금리에 대한 시장의 신뢰 제고다. CD 고시 담당 증권사들의 고시금리 입력 기준에 대한 의구심이 커 신뢰 제고에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내부 준법 감시프로그램을 통해 CD 고시금리가 적절히 산정됐는지를 확인하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이 문제는 이제 법적 강제력에 의해 일정 부분 해결될 여지가 생겼다. CD 고시금리를 산출하거나 제출하는 기관이 확대된 형태의 내부 통제 프로그램을 마련하도록 한 금융거래지표관리법의 국회 통과가 목전까지 왔기 때문이다.
CD의 시장성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일정 부분 회복되고 있다. 금융위가 은행 예대율을 산정할 때 CD 잔액을 예수금의 최대 2%까지 인정해 주는 방안 등을 곧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발행량과 유통량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CD 금리 변동성이 확대되면 될수록 이해관계자들의 볼멘소리도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뚜렷한 근거 없이 의혹만 키우는 문제 제기라면 정치판과 다를 게 없다. CD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겠지만 금리만 좀 크게 움직였다 하면 제기되는 음모론은 시장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편집 유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