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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브렉시트 小史(하)

입력: 2016- 07- 13- 오후 02:16
© Reuters.  (장태민 칼럼) 브렉시트 小史(하)

서울, 7월13일 (로이터) -


▲ 금융 - 소로스와 환율

6월23일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기 전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사람은 조지 소로스였다.

1992년 파운드화를 공격하면서 영란은행을 무너뜨렸던 소로스의 발언 때문이었다.

소로스는 국민투표 전 만약 브렉시트가 일어나면 파운드화 가치가 15% 떨어졌던 1992년 9월보다 더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로스는 1992년 9월15일 사람들에게 파운드화가 대폭락할 것이란 소문을 낸 뒤 하루동안 무려 100억달러를 베팅하는 위세를 떨쳤다. 소로스의 파운드 공격에 합세한 투기세력이 소로스가 베팅한 금액보다 10배 이상 많은 돈을 파운드화 매도에 투입하면서 영란은행을 무력화시켰다.

당시 투기게임에서 소로스는 10억달러 이상을 벌었으며 소로스의 '돌격' 명령에 따랐던 헤지펀드들도 큰 돈을 만졌다.

영란은행은 결국 가입 6년만에 ERM(유럽환율조정메카니즘: 환율 변동범위를 고정한 시스템)을 떠나게 된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파운드화를 사면서 투기세력에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당시 소로스가 파운드화를 공격할 때 금리는 지금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았다. 영국은 고평가된 파운드화를 유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무려 10% 수준으로 유지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과거엔 이렇게 금리가 높았던 시절이 있었다. 소로스 사건 이후 영국은 기준금리를 5%대로 낮춰 경기를 부양했다.

한데 2016년 브렉시트가 일어났을 때 영국 기준금리는 0.5%에 불과했다. 이미 금리를 통한 경기부양 여력에 상당한 한계가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다 보니 브렉시트 결정과 함께 파운드화의 운명도 관심이었다. 파운드화는 브렉시트 결정 이틀만에 14% 폭락한 뒤 급등락을 지속했다. 바짝 전열을 정비한 헤지펀드들은 영란은행의 파운드화 방어를 위한 무기(달러화, 외환보유액)가 1500억달러로 안 된다면서 공격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반대 쪽에선 미국과의 통화스왑(영란은행은 필요시 미국 연준으로부터 실탄(달러)을 제공받을 수 있다)을 감안할 때 공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 맞서기도 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달러/원 환율은 파운드, 유로화가 폭락할 때마다 급등(달러에 대한 원화가치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금융 - 환율과 통화전쟁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으로 파운드화 가치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전수준으로 폭락하자 환율전쟁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글로벌 공조'를 강조하지만, 최근 수년간 각국이 보였던 행태는 이같은 협력 운운이 그저 '연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중앙은행가들이 거짓말쟁이가 된지는 오래됐으나 자국의 이익을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각국은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경쟁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자국통화를 낮추려는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환율이라는 게 상대방이 있는 '상대적' 가치인 만큼 우리의 수출이 늘고 경기가 회복된다면 상대국은 피해를 봐야 한다.

6월24일엔 엔화와 함께 '안전자산'의 대표선수 중 하나인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유로당 1프랑으로 질주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자 스위스중앙은행(SNB)은 재고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프랑화를 시장에 내다 풀기도 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엔화 환율은 달러당 99엔, 즉 두자리수로 급락하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아베 총리가 4년간 떨어뜨렸던 엔화가치가 4시간 만에 도로묵이 됐다는 감각적인 카툰이 인터넷에 떠돌기도 했다. 아베노믹스의 핵심 중 하나는 엔화가치 하락을 통해 경기를 진작시키는 것이었다. 일본 역시 엔화 가치 급등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달러화 가치가 유로화에 비해 급등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미국도 긴장했다. 달러의 유로에 대한 강세 등은 미국 기업의 수출 둔화, 주가 하락 등으로 미국 경제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브렉시트로 인해 글로벌 통화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2016년엔 금리를 전혀 못 올릴 것이란 인식이 커졌다. 자국 경기가 좀 좋아졌다고 연준이 금리를 올리다가는 달러 추가 강세를 불러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다보니 2015년 말 겨우 한차례 금리를 올렸을 뿐인 연준이 다시 금리를 내리게 될 것이란 예상이 급하게 늘어나기도 했다.

중국의 힘이 막강해지긴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유일한 세계 초강대국이다. 미국의 움직임은 모든 나라가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 투표 이전 미국 재무부는 일본과 독일, 중국, 대만, 그리고 한국까지 포함한 나라들에게 '환율정책 관찰대상국'이란 딱지를 붙이면서 환율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인위적인 통화약세는 무역보복을 의미한다는 미국의 메시지였다.

2016년 초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뒤 금융시장 상당수 종사자들의 예측과 달리 추후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이유가 미국의 압력 때문이었을 것이란 추측도 많았다. 세계는 평평하지 않으며 힘의 우위가 작용한다.

하지만 일본의 자민당은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뒤 추가적인 부양을 공언하면서 두자리수 위협을 받던 달러/엔 환율을 다시 위로 끌어 올렸다.

이런 식이면 한국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인 중국 역시 가만히 있기가 어렵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급준비율 인하 등을 통해 글로벌 상황에 맞설 수 있다. 중국은 브렉시트 확정 이후 위안화 가치를 2010년 말 이후 최저수준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이래저래 세계는 말로만 공조를 외칠 뿐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이같은 각자도생이라는 변함없는 구도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이벤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학급내 '이기적인 반장' 역할을 하는 미국이라는 가장 힘센 경쟁자가 다른 나라들을 겁 주는 일을 반복되고 있다.

한국의 원화는 이런 구도 속에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보다 2배 많은 3700억달러가 넘는 풍족한(?)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어 외견상 여유는 있다. 아무튼 고래들의 거친 몸 싸움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 금융 - 주식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으며, 글로벌 경기 비관론을 극대화시켰다.

브렉시트 찬성 이후 당사국 영국, 그리고 한국 뿐만 아니라 주요국 주가들이 일제히 폭락했다. 특히 브렉시트가 결정된 24일 가까운 일본의 니케이225지수는 8%나 대폭락하기도 했다.

6월 25~26일 주말을 보낸 뒤 맞이한 27일 미국의 나스닥지수는 6%나 폭락했다. 프랑스 주식시장의 CAC지수는 2거래일만에 10%가 폭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들은 되돌려진다. 이벤트 충격을 극복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국, 미국 등 많은 나라의 주가는 브렉시트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벤트의 크기에 따라 주식의 회복 속도나 폭은 달라지지만 단지 불확실성 그 자체에 깜짝 놀라 추락한 주가는 제자리 근처로 오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국내 주식시장의 코스피지수는 브렉시트 결과가 나오기 전인 6월23일 1986.71에 종가를 형성했다. 이후 24일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장중 1892.75까지 폭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지점이 저점이었으며 지수는 계속 반등해 7월13일엔 장중 2010선을 뛰어넘기도 했다.

주가지수가 브렉시스 투표 이전 수준 위로 간 것이다. 영리한 투기꾼이라면 지수 1900선에서 레버리지인덱스를 사서 짭짤한 수익을 거뒀을 것이다.

글로벌 주가가 폭락했던 2013년의 '테이퍼 탠트럼'(긴축발작)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준 의장 벤 버냉키가 양적완화를 줄일 것이라고 한 발언에 글로벌 주가가 일제히 폭락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주가는 그 사건이 벌어진 후 2주만에 원위치로 돌아갔다. 시장의 과잉반응은 늘상 영민한 주식투자자들에겐 기회가 되는 것이다.

여전히 주식시장 매매자(혹은 금융시장 매매자)들이 가격변수를 바라보는 고전적인 카테고리 '실적 장세'와 '유동성 장세'라는 개념은 유효하다.

실적장세의 개념은 향후 기업, 혹은 산업의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면 주가가 오른다는 것이다. 반면 유동성 장세는 '돈의 힘'으로 가격변수가 오를 수 있다는 관점이다.

향후 기업실적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돈을 더 푼다면 주가는 오히려 오를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가 자주 관찰했던 패턴이다.

물론 장기간 글로벌 경기가 나빠지고 더이상 유동성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들면 주식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 금융 - 채권


브렉시트 이후 각국 국채가격은 계속 올랐다. 즉 글로벌 금리가 사상최저 수준을 경신하는 흐름을 이어갔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주가는 하락 뒤 상승했고 채권가격은 역대 최고 수준을 향해 나아갔다.

미국채금리는 7월 5일 6bp 하락하면서 1.375%로 내려가 2012년 7월24일 기록했던 사상최저치 1.388%를 경신했다. 30년물 금리도 7bp 떨어진 2.155%를 나타내면서 역사를 다시 썼다.

미국채 금리의 기록 경신엔 브렉시트에 따른 안전자산선호, 아울러 미국채 금리가 유럽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 작용했다.

미국 금리가 사상최저치를 경신하던 시점 독일의 국채10년물은 -0.185%, 일본은 -0.277%, 스위스는 -0.611%를 기록했다. 이런 나라들은 마이너스를 확대해버린 것이다.

마이너스가 아니더라도 각국 국채금리는 역사적 저점 수준이었다. 프랑스 국채10년물이 0.132%, 브렉시트 당사국인 영국 국채가 0.771%이었다.

2016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기록 중인 국채규모가 12조 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됐지만 브렉시트 결정 이후 더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글로벌 경기에 대한 우려 속에 주요국의 통화정책 완화 기대 등은 금리 반등을 한계를 인식시켰다. 영국,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의 추가적인 조치가 대기하고 있다.

한국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7월6일 1.203%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고5년 1.245%, 국고10년 1.383% 역시 신저점이었다. 이자율스왑(IRS) 시장에선 역외 외국인의 힘 등이 작용해 다수 테너(만기)의 금리가 1.1%대로 내려가고 10년이 1.20% 수준까지 내려오기도 했다.

국내시장의 금리들은 기준금리인 1.25% 전후에 오밀조밀하게 붙어 버렸다. 시장이 외부로 열려 있다 보니 한국과 신용등급(AA)이 비슷한 나라들의 금리와 비교하는 모습도 많아졌다. 한국금리가 역사적 최저수준이지만, 외국인이 '어 높네'하면서 들어오면 딱히 방법이 없다.

아무튼 원화가 경기 불안시 약해지는 데에 비해 채권은 강해졌다. 열려 있는 금융시장 시스템에서 환율과 금리상품은 매우 가까운 친척과 같은 상황이지만 한국의 원화는 위험자산, 채권은 안전자산으로 대접받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때에 아무개 증권사에서 연락이 왔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3개월짜리 특판 RP(환매조건부증권)가 만기됐으니 지점을 내방하라는 메시지였다. 연5% 특판상품에 3개월을 굴린 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연1.1%를 감수해야 상황에 직면했다.


▲ 브렉시트,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브렉시트 이후 모든 사람들이 비관론에 휩싸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영국의 EU 이탈로 글로벌 경기가 받는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는 관점이 강하다.

각종 기관에선 브렉시트로 향후 영국이 성장률 몇 퍼센트를 까먹게 될 것이란 전망 보고서를 내곤했다. 그 여파로 세계경제가 받는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식의 얘기도 많았다.

오랜 기간 연준 의장으로 재직한(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의 책임이 있는) 앨런 그린스펀은 브렉시트 이후 '1987년 이후 최악의 시기가 온다'는 무서운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런스펀은 부동산 부양의 역효과와 글로벌 경제의 파국을 예상하지 못했고 이를 막지 못한 실무 책임자이기도 하다. 그의 말처럼 세계가 굴러갈지는 미지수다.

어떻게 보면 브렉시트는 영국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말 그대로 브렉시트가 단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이 사이에 영국의 체제를 정비하면서 자신들의 경제 체력을 키울 수도 있다.

영국이 EU 탈퇴의 역효과를 최소화하면서 계속해서 EU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영국이 거래선을 EU외 지역으로 다변화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EU 정책결정자들의 '관료주의' 폐해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를 얻을 수도 있다. 예컨대 EU의 각종 규제, 재정부담 등에서 벗어나 자율성의 힘으로 경제 활력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이 자신들의 독선 탓에 고립을 자초해 글로벌 경제의 뒷무대로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영국에겐 어려운 미래가 남아 있지만, 이들이 반드시 실패한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물론 콧대 높은 영국인들 앞엔 거대한 도전이 놓여 있다.

▲ 한국, 영국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

한국의 수출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5%가 채 안 된다.

한국과 영국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사실 그리 강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영국 사태가 글로벌 금융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희미한' 연결고리를 과소평가해선 안된다.

영국은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자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인 30조원 중반대의 투자를 하고 있다.

아울러 영국은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은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었다. 영국의 덩치는 사실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브렉시트 이후엔 영국의 경제규모가 프랑스에 뒤쳐졌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아무튼 영국의 EU이탈이 가시화됨에 따라 한국도 영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등 각종 조치가 필요하다. 기술적으로 관세 등에 따라 수출 상품의 경쟁력은 크게 차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다른 나라들과 일일이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물론 영국의 이탈에 따라 EU 전체의 경제가 위축된다면 이 부분의 영향 또한 간과하긴 어렵다.

영국과의 실질 교역 규모가 미미한 점, 영국 등 세계 불안에 따른 엔고(엔화 가치 상승)가 한국의 글로벌 무역구도에 이익이 되는 점 등도 고려요인이다.

사실 영국인들의 갈등은 다른 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자유로운 교역이나 무역이 빈부격차를 확대시킨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4년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선언' 이후 금융 규제를 너무 성급히 푼 탓에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돼 IMF 사태를 맞기도 했다. 개혁과 개방은 속도조절이 생명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현재 한국은 세계 GDP의 3/4를 차지하는 지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다만 치열한 글로벌 경쟁구도와 '살아남은 자에게 몰아주기' 정책 탓에 한국은 비정규직 급증, 청년 실업, 출산율 세계 꼴찌 등으로 미래의 성장 포텐셜을 스스로(!) 깎아먹어 버렸다. 정책가들은 미래를 보는 시야가 없이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해 한국의 미래를 갉아먹었다.

한국의 임금 근로자 1950만명 중 임시직과 일용직이 660만명이다. 정부의 공식 통계가 이정도이고 실제 상황은 그 격차가 더 심하다.

한국에선 브렉시트 결정이 나자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당연하다'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됐다. 한국은 내부, 혹은 외부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돈부터 만들자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으며, 금융시장은 금리 추가인하 역시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 이 시대의 화두, '양극화와 각자도생'

브렉시트가 결정됐을 때 금융시장의 한 지인이 이런 얘기를 했다.

"국내 4.13 총선의 새누리당 패배, 미국 대선과정에서의 트럼프 부각, 영국의 브렉시트 모두 계급간 격차 확대가 원인입니다. 브렉시트는 영국만의 문제를 부각시킨 게 아니라 전세계적인 양극화, 개인이익 지상주의를 보여주는 견고한 사례입니다."

그는 좀더 현학적인 표현도 쓰면서 사태를 진단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금융위기 전까지 득세했던 신자유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의 큰 물결이 바뀌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현상이지요."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경쟁과 불평등'을 조장하면서까지 격차확대를 칭송하던 IMF마저 태도를 바꿨다. IMF는 심심찮게 지나친 양극화가 경제성장에 해롭다는 입장을 보이곤 했던 것이다.

시장 만능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사상은 퇴조했다. 신흥국이 선진국을 본받아 자유경쟁을 하면 이롭다는 '워싱턴 컨센서스'같은 이론도 과거의 유물이 됐다.

한국이 1997년 IMF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아 서구의 '경제 식민지'가 됐을 때만 해도 신자유주의는 위세를 떨쳤다. IMF의 처방이 한국의 양극화를 극대화시키고 '유한계급'의 득세를 가져왔다고 보는 시각도 여전히 많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경기가 제대로 반등하지 못하면서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이 시대를 이끄는 화두가 됐다.

각국은 일상적인 환율전쟁을 벌이면서 금리를 낮추곤 했다. 각국 정부 관료나 중앙은행 총재들은 '협력'을 다짐하면서 실제로는 '네 이웃을 거지로 만들어라'는 원리에 충실하면서 통화가치 낮추기 등에 골몰했다.

경제적으로 고립주의, 보호무역 등도 강화되는 조짐을 보였다. 세계화가 주는 이익을 공동으로 추구하기보다는 '각자도생'이 시대의 화두가 된 듯했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교역이 확대되는 데 큰 장애가 됐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는 미국의 '부동산 투기'에 따른 경제위기, 위기 극복을 위한 극단적인 저금리, 이후 지속된 빈부격차 확대와 정책 여력 소진 등의 과정을 겪고 있으며 여전히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유럽 통합의 꿈은 군사적 위협 등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를 위해 유럽은 경제적으로 서로를 얽어매는, 즉 서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정책을 펴 왔다. 시장 자유화를 통해 무역과 투자 등에서 상호 의존하게 만들면 경제공동체가 된다는 신념이 작용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 문제 등을 치유하지 못했으며 결국 각자도생의 철학이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섣부르게 경제 낙관론을 설파해선 안 되는 시대가 돼버렸다.


(편집 임승규 기자)

(taemin.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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