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우한에서 신종 폐렴 환자 27명이 발생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한 건 작년 12월 31일이었다. 열흘이 안 돼 첫 사망자가 나왔다. 미국에 상륙한 건 그로부터 2주일 정도 지난 올 1월 21일이다.
두 나라의 방역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중국 내 발병이 급증했던 시기는 1월 말부터 2월 초뿐이었다. 강력한 사회 통제를 바탕으로 확진자가 급격히 감소했다.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 수가 4200만 명을 넘었지만 중국의 누적 감염자는 8만5000여 명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에선 여전히 하루에 5만~6만 명의 환자가 쏟아지고 있다. 누적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시기(3월 13일)가 늦기도 했지만 통제를 거부하는 사회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다.
이런 방역의 차이는 G2(주요 2개국) 경제 성적표를 극단으로 갈라놨다. 올 1분기에 -6.8%로 잠깐 뒷걸음질 쳤던 중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분기 3.2%에 이어 3분기 4.9%를 기록했다. 거의 모든 국가가 코로나 충격 속에서 역성장 중이지만 중국은 나홀로 ‘V자’ 반등에 성공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성장률이 -4.4%로 후퇴하겠지만 중국은 1.9% 신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10월 국경절 황금연휴(1~8일) 때의 중국 소매 판매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9% 증가했다. 대부분의 지표가 ‘정상’을 가리키고 있다.
미국 성적표와는 정반대다. 미국은 전례 없는 규모로 달러를 풀고 있으나 ‘U자’ 회복은커녕 장기 침체를 걱정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궁지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 바이러스’를 탓하는 이유다.
트럼프는 2017년 취임 직후부터 중국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왔다. 공산당이 자국 기술을 탈취하고 미국인 정보를 몰래 빼내간다고 주장했다.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바로잡겠다며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작년부터는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물론 바이트댄스(틱톡), 텐센트홀딩스(위챗) 등 중국 굴지의 기업을 직접 제재하고 있다.
미·중 충돌은 내년에 미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중국의 급부상에 위기감을 느끼는 미국인이 워낙 많아서다. 미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자국인 10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응답자의 73%가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기저엔 코로나 대유행의 원인 제공자인 중국이 ‘코로나 시대의 승자’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불편해하는 심리도 있는 것 같다.
최근 공개된 투자은행 UBS의 미래 예측은 더욱 충격적이다. 중국의 내년 GDP가 15조8000억달러로, 미국(21조2000억달러) 대비 75%까지 늘어날 것으로 봤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만 해도 중국 GDP는 미국의 31%에 불과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10년 후인 2030년 중국 경제가 미국을 제칠 것으로 예측됐다. 일본이 2010년 중국에 뒤졌을 때의 충격을 미국도 머지않아 경험할 수 있으리란 얘기다.
미국의 투자 대가들 역시 중국 성장에 베팅하고 있다. 대중(對中) 압박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디커플링(결별)까지 언급하고 있는 미국 정부와는 다른 행보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은 지난달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계속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 투자를 줄일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억만장자 투자자인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회장은 밀컨 콘퍼런스에 나와 “중국의 성장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며 “미·중 갈등으로 달러화 가치만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간은 중국 편이란 것이다. 운용 자산이 2210억달러에 달하는 칼라일그룹의 이규성 회장도 “중국에서 성장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더 큰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정치·경제·안보 등을 폭넓게 미국에 기대고 있지만, 사실상 경제만 의존하는 중국 비중이 갈수록 커져서다. 한국의 작년 대(對)미국 수출 비중은 13.5%였는데, 중국 비중은 이보다 두 배가량 많은 25.1%에 달했다. 일각에서 줄타기 외교라고 폄훼하고 있지만 ‘샌드위치 국가’로서 다른 방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디지털 화폐 전쟁…미·중의 또 다른 열전미국이 위안화의 급부상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달러 패권에 도전할 뜻을 보이지 않던 중국이 무역 전쟁을 계기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어서다.
세계적으로 위안화 결제 비중은 매우 낮은 게 현실이다. 지난 8월 기준 1.9%에 불과했다. 반면 달러 비중은 39%였다. 각국 중앙은행 자산의 62%도 달러 표시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 20여 개국에 위안화 청산은행을 지정하고, 각국 간 통화 스와프를 확대하는 등 위안화 국제화를 서두르고 있다.
디지털 화폐 발행은 더욱 상징적인 계기가 될 전망이다. 미국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이 중국은 최근 선전시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성공적으로 실험했다. 인민은행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화폐를 내놓는 것은 물론 국제 무역에도 폭넓게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위안화가 10년 안에 엔화를 밀어내고 달러·유로화에 이어 3대 기축 통화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위안화가 국제 무역에서 달러 대체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란 얘기다. 스티븐 배넌 전 미국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국제 통화를 놓고 미 ·중 간 열전(hot war)이 진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소리 없는 화폐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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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와 패자 갈라놓은 'K자 회복'
日, 이번엔 국제금융허브 성공할까
"문제는 플랫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