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초대형 호텔 두 곳이 문을 열었다.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는 4월,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는 10월에 장사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드래곤시티는 호텔이 어울리지 않는 용산전자상가와 용산역 사이에, 파라다이스는 풍광도 없는 섬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까지 덮쳤다. 중국인들의 발길이 뚝 끊기자 개장 첫해 객실의 20~30%를 채우는 데도 애를 먹었다. 둘 다 “곧 망할 것”이란 말까지 들어야 했다. 2년이 흘렀다. 예상은 빗나갔다. 주말이면 예약하기 힘든 호텔이 됐다. 계절에 상관없이 휴가를 즐기는 ‘호캉스’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 입지 선정 과정에서 발상의 전환, 지속적인 투자, 호텔 소비자층을 바꾸는 마케팅 등이 이들 호텔을 명소로 만들었다.
드래곤시티, 작년 4분기 첫 영업흑자
파라다이스시티의 작년 매출은 3016억원. 2017년보다 50.4% 증가했다. 카지노를 제외한 호텔 부문 매출은 두 배나 늘었다. 드래곤시티는 작년 4분기에 개장 이후 첫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4분기 매출은 처음 200억원을 넘어섰다. 작년 연간 매출은 556억원. 올해는 8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카지노가 없기 때문에 매출은 파라다이스보다 적다.
두 호텔이 이렇게 빨리 정상 궤도에 올라설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많지 않다. 다들 중국의 사드 보복이 풀려야 살 것이라고 했다.
반전의 키워드는 ‘호캉스’였다. 이들은 중국인 관광객만 쳐다보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국내 호캉스 수요를 개척했다. 파라다이스시티는 불황에도 관광 수요를 잡기 위한 투자를 이어갔다. 호텔 컨벤션 카지노로 문을 연 이후 스파, 클럽, 쇼핑몰, 실내광장 플라자를 차례로 열었다. 지난 3월에는 어린이 테마파크를 열어 1차 개발을 마무리했다.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복합리조트를 완성했다.
드래곤시티는 4개 브랜드 호텔 가운데 ‘그랜드 머큐어’에 반려견 출입을 허용했다. 대부분 호텔이 반려견 동반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 ‘멍 프렌들리 서비스’란 이름을 붙여 반려견을 동반한 방문객에게 최적화한 서비스도 제공했다. 매년 가을 한강에서 열리는 불꽃축제 마케팅도 대대적으로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다리 모양처럼 걸쳐진 ‘스카이킹덤’이란 공간을 불꽃축제 명소로 만들었다. 31~34층에 있는 스카이킹덤에서 축제 기간 재즈 밴드 공연을 하고, 레스토랑에선 맞춤 메뉴도 내놨다.
이런 노력을 소비자들은 알아봤다. 두 호텔에는 ‘호캉스족의 성지(聖地)’란 별칭이 붙었다. 투자와 마케팅의 결과였다.
문화 마케팅과 젊은 층 공략
파라다이스시티에는 ‘플라자’라는 대규모 실내 광장이 있다. 파라다이스 관계자는 “텅빈 이 공간이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지며 중국인 관광객의 공백을 메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다. 이곳에서 팬 수천 명이 모인 ‘엑소’의 컴백 쇼케이스,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레드카펫 등 대규모 행사를 줄줄이 열었다. 젊은 소비자들이 파라다이스시티를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작년에는 e스포츠 대회 ‘오버워치 월드컵 조별 예선’도 개최했다. 20~30대 ‘밀레니얼 세대’들이 반응했다. 인스타그램에는 파라다이스 해시태그로 등록된 게시물이 11만 개가 넘는다. 파라다이스시티 공식 유튜브 계정은 누적 조회수 1200만 회를 넘겼다. 겨울에도 수영할 수 있도록 연중 내내 온수를 채운 야외수영장과 스파 ‘씨메르’ 등은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이름났다.
호텔 내 예술품도 활용했다. 파라다이스시티에는 현대미술의 거장 제프 쿤스, 데이미언 허스트 등의 예술품이 3000여 점이나 있다. 이들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학교, 기업 등에 기꺼이 개방했다.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 감독, 미디어 아티스트 콰욜라의 아시아 첫 개인전 등도 열었다.
호텔 콘셉트, 도시로 확장
드래곤시티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했다. 지난달 롯데백화점 주도로 열린 버버리·오프화이트·몽클레르 등 8개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를 유치했다. 드래곤시티 꼭대기에 있는 수영장 ‘스카이비치’는 풀 파티 명소가 됐다. 래퍼 도끼 등 연예인들도 자주 찾아 팬들까지 줄지어 선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현재 두 호텔의 객실점유율은 주말 90~95%, 평일 40~50% 수준까지 올랐다. 방문객의 절반 이상이 내국인이다. 외국인 위주인 다른 서울 시내 5성급 특급호텔과는 다르다. 미세먼지로 야외 활동이 힘든 주말에는 예약이 쉽지 않을 정도다. 호텔 안에서 먹고, 체험하고, 즐기는 게 가능해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호텔의 개념을 도시로 확장한 발상이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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