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사진)은 지난해 12월 베트남 하노이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기 엔진부품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2017년 12월 중국 장쑤성의 한화큐셀 공장을 찾은 뒤 1년 만의 해외 출장이었다. 계열사 독립경영을 강조해온 김 회장이 이례적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장을 방문한 것을 놓고 재계에선 “한화가 태양광과 화학에 이어 항공기 사업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빅3’에 항공기 엔진 부품 공급
김 회장이 각별한 관심을 쏟아온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잭팟’을 터뜨렸다. 국내 유일의 항공기 엔진 제작업체인 이 회사는 미국 프랫앤드휘트니(P&W)에 40년간 17억달러(약 1조9000억원) 규모의 항공기 엔진 부품을 공급한다고 23일 발표했다. P&W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영국 롤스로이스(R&R)와 함께 세계 3대 항공기 엔진 제작업체로 꼽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수주한 부품은 P&W가 개발 중인 최신형 항공기 엔진인 ‘기어드 터보팬(GTF)’에 들어가는 하이 프레셔 터빈(HPT) 디스크 2종이다. 고온과 고압의 환경에 노출되는 특성상 고도의 제조기술이 요구되는 첨단 부품이다. 엔진 수명 연한인 45년간 꾸준히 교체가 필요해 유지·보수 부품 매출도 기대된다. GTF 엔진은 유럽 최대 민항기 제작사인 에어버스의 중단거리형 여객기인 ‘A320네오’에 탑재된다. A320네오는 6000대 이상이 주문된 인기 기종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내년부터 개발에 착수해 2022년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40년 장기 공급 계약을 포함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5년간 P&W와 181억달러(약 20조원)에 달하는 항공기 엔진부품 공급 계약을 맺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국의 항공기 엔진 개발업체인 프랫앤드휘트니(P&W)와 공동개발사업(RSP) 계약을 맺은 GTF 엔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뚝심 투자, 결국 빛 봤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대규모 수주를 따낼 수 있었던 것은 2015년 P&W와 체결한 GTF 엔진 공동개발사업(RSP) 계약 덕분이다. 수조원대의 투자비가 필요한 항공기 엔진 개발사업은 수익을 참여 지분만큼 배분하는 RSP 계약을 맺는다. 이 회사는 2017년 489억원, 2018년 950억원 등 매년 수백억원을 RSP에 쏟아부었다. 연간 영업이익을 웃도는 투자는 김 회장의 ‘뚝심’ 덕분에 가능했다. 그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임직원들에게 “항공기 엔진과 같은 미래 사업은 장기적인 투자와 수많은 기술인력을 양성해야 하니 당장의 수익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며 투자를 밀어붙였다.
김 회장의 든든한 지원에 힘입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형 발사체에 들어갈 75t·7t 액체 로켓엔진의 총조립과 터보펌프·개폐밸브 제작을 맡는 등 항공우주산업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글로벌 항공우주산업 시장 규모는 2017년 700조원에서 2030년 1100조원으로 60%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한화그룹은 ‘화학’과 항공기 엔진 제작사업을 포함한 ‘방산’을 핵심 산업으로 삼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01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화학(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과 방산(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계열사를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화는 이후 사업 연관성이 높거나 중복된 사업군(群)을 통합해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방위산업 부문 중간 지주사로 재탄생하며 (주)한화 기계부문의 ‘항공사업’을 인수하는 등 항공기 엔진 사업에 역량을 집중시켰다. K-9 자주포를 생산하는 한화지상방산도 K-21 장갑차 등을 만드는 한화디펜스를 흡수 합병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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