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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兆 푼다더니…'보증'에 막힌 코로나 대출

입력: 2020- 04- 02- 오전 02:29
© Reuters.

코로나19 사태로 자금난에 빠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긴급대출이 본격 시행된 1일 미아동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북부지원센터는 한꺼번에 몰린 소상공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뉴스1

“언론에서는 매일 ‘무제한 돈풀기’ ‘전례 없는 대책’이라고 하는데, 저한텐 딴 나라 얘기네요.”

지난해 서울에 식품업체를 차린 S사장은 최근 ‘코로나 대출’을 거절당한 뒤 막막해하고 있다. 법인사업자가 내야 하는 20여 종의 서류를 어렵사리 챙겨 신청했지만 ‘기존 보증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5년 전 개인사업자로 다른 사업을 하면서 신용보증재단을 이용했던 이력이 문제가 됐다.

정부는 기업과 자영업자가 쓰러지는 것을 막겠다며 58조원 규모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금융지원 대책을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바닥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한도’ ‘신용등급’이라는 벽에 막혀 돈을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금의 대책으로 급격한 ‘신용경색’에 빠져들고 있는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벌써부터 금융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1일 영세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보증 없이 최대 1000만원짜리 긴급대출 신청을 받기 시작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62개 지역센터에는 새벽 2시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선착순 마감’에 막힌 이들이 고성과 욕설을 쏟아내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난 대기자들도 S사장과 똑같은 얘기를 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K대표는 “기존 신용보증기금 대출이 남아 있어 추가 보증부대출을 거절당했다”며 “이 돈이라도 구해보려고 새벽에 나왔다”고 했다.

정부는 이날 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재단 등의 기존 보증 이용액과 관계없이 최대 5000만원까지 추가 보증을 내주는 ‘신속·전액보증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하지만 대상이 연매출 1억원 이하 사업자로 한정되는 등 파격적인 ‘신용 보강’ 대책으론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산업은행에도 돈을 구하려는 중소·중견기업의 발길이 몰리고 있다. 산은은 지난달 26일 5조원 규모의 코로나19 피해기업 특별 대출을 출시했다. 4영업일 만에 1562억원(3월 31일 기준)의 자금이 집행됐다. 산은 관계자는 “영업점마다 법인대출 신청서류가 밀려들어와 업무가 거의 마비된 상태”라고 했다. 지금 추세라면 5조원 한도가 1~2개월 안에 소진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고있는 기업과 사업자는 반드시 구제한다’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소상공인도 대기업도 신용 대폭 보강해줘야 코로나 위기 넘는다"

코로나 대출 신청 첫 날…돈 풀어도 돌지가 않는다

“다행히 한두 달은 버티게 됐습니다. 그다음은 모르겠지만요.”

서울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K사장은 2월 말 신청한 ‘코로나 대출’이 2일 입금된다는 안내 문자를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뚝 끊긴 손님이 언제 돌아올진 기약이 없다. 그는 “지금 상태라면 여름이 오기 전에 장사를 접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긴급자금을 받은 K사장은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기존에 보증을 받은 이력이 있는 사업자는 추가 보증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보증한도가 꽉 차 있고, 신용등급도 낮은 이들에겐 사업자금을 추가로 조달할 길이 막힌 상황이다.

○정부의 ‘보증 확대’ 딜레마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금융지원 대책은 ‘보증부 대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통상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은행에서 자기 신용만으로 대출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신용보증재단을 중심으로 신청이 폭증하면서 상담 후 자금을 받기까지 2~3개월씩 걸리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코로나19 금융지원의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와 중소벤처기업부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보증기관의 특성상 부실화 위험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돈을 공급할 수는 없다”고 했다.

NICE평가정보에 따르면 이른바 저신용자로 분류되는 7~10등급은 부실률이 급상승한다. 1년 동안 신용정보원에 연체정보가 등록되는 비중이 6등급은 1.91%에 불과하다. 하지만 7등급은 7.00%로 훌쩍 뛰고, 10등급에서는 37.04%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보증기관도 리스크(위험)를 관리해야 하니 무작정 내줄 수 없다는 것은 안다”면서도 “기본소득 얘기까지 나오는 와중에 무더기 도산이 우려되는 상황부터 막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대기업 지원은 여전히 금기어

정부 내에서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료는 “전례없는 파격적인 신용보강 대책이 필요하다”며 2008년 금융위기 때 사례를 들었다. 12년 전 정부는 총 2000억달러(약 240조원) 규모의 신용보강 계획을 수립하고 대대적인 자금지원 의사를 밝혔다. 감당이 될까 의문시되는 파격적인 수위였지만, 이 계획이 시장에 전파되면서 오히려 불안감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금융위기 충격이 잦아든 시점까지 이 중 실제 집행된 자금은 100억달러에도 못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최근 “한국은행의 현실 인식이 안이하다”고 이례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선진국 중앙은행이 회사채, 기업어음(CP) 직접 매입 등에 나서는 상황과 너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중소·중견기업에 이어 대기업의 자금난이 본격화하는 상황은 이런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 대책은 두 차례에 걸쳐 총 58조원 규모로 확대되긴 했지만 대부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금융권에서는 “대기업 지원은 특혜 비판을 의식해 마치 금기어처럼 잘 언급되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조기 종식 안 되면 추가대책 불가피”

금융회사와 정책기관을 총동원해 이뤄지는 코로나19 금융지원은 평상시에 비해 문턱이 한결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은행 관계자들은 연 1~2%대로 공급되는 자영업자·중소기업 특별대출은 “파격적인 조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1금융권은 물론 2금융권까지 모두 참여하는 최소 6개월간의 대출 만기 연장, 이자 납부 유예 등의 조치도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처음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긴급지원 자금을 소진한 사업자들에게 ‘2차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세 소상공인 중에는 코로나19 금융지원의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말 창업한 자영업자의 경우 매출 등을 입증할 실적이 부실한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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