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Times - 엔화. [사진=뉴스1]
[시티타임스=글로벌일반] 달러당 엔화 가치가 33년 만에 최저치에 다가서는 가운데, 원·엔 환율도 850원대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월 이후 15년10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1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원·엔 재정환율은 전날 오후 한때 850원대 초반을 기록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을 보면 원·엔 환율은 지난달만 해도 월 평균 903.30원으로 900원 선을 넘겼다. 올해 7월5일(897.3원)과 7월31일(899.6원)에 잠깐 일 평균 899원대로 떨어진 적이 있고 9월15~20일과 10월11~12일에도 897~899원 수준을 나타냈지만 그 외에는 계속해서 일 평균 900원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 일 평균 원·엔 환율은 매일 앞자리가 '8'자를 찍는 등 부쩍 낮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6일에는 금융위기 이후 본 적 없는 860원대를 찍더니, 전날 가장 낮게는 851원대까지 내렸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를 봐도 슈퍼 엔저 현상은 두드러진다. 엔화 가치는 이달 1달러 당 151엔을 지속 상회할 정도로 급격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대로 엔·달러가 152엔에 근접해 151.94엔을 넘으면 1990년 7월 이후 3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셈이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통화 긴축 기조로 돈줄을 죄는 가운데 일본 중앙은행(BOJ)만 홀로 완화 정책을 고수하면서 엔저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여기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끝났다는 관측이 우세해지면서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해지자 원·엔 환율 하락을 부채질한 것으로 보인다.
◇'엔저=수출 타격' 옛말이라지만 장기화 땐 변수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만 해도 엔저는 국내 수출 기업을 고전케 한 악재였다.
2010년대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주도한 엔저 정책은 특히 한국에 피해를 입힌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수출 성장률은 2012년에는 4.4%였으나 엔저가 본격화한 2014년에는 2.3%로 주저앉았다.
엔화가 저렴해지면 반대로 원화는 비싸진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비슷한 물품을 수출하면서 경쟁한다는 전제 아래 엔저는 한국의 가격 경쟁력이 밀리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에 엔저에 따른 한국의 수출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예컨대 한국무역협회의 지난 7월 분석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 10% 상승(엔화 가치 하락)은 수출금액 0.1% 감소로 이어지며, 엔·달러 실질환율의 10% 상승은 수출물량을 0.86% 축소시키는 것으로 추정됐다.
물론 최근에는 엔저가 과거와 같은 타격을 입히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무역협회는 앞선 분석 결과에 기초해 "한국의 수출 감소세가 둔화하면서 무역수지가 16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지만 엔화 약세가 일본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우리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면서도 "원화 동반 약세와 한·일 수출 경합도 둔화로 인해 그 영향이 크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이 2012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일본과 다른 물건을 글로벌 시장에 내다팔고 있어 예전보다 타격이 덜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2022년 기준 한일 수출 경합도는 2012년 대비 0.022포인트(p) 하락한 0.458을 기록했다.
한국의 기술 경쟁력이 가격 경쟁력을 무시할 정도로 개선된 영향도 있다. 한국이 단순히 싼 가격으로 일본과 다투던 시절은 지났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지난해 5월 '엔저는 한국에 리스크가 아니다' 제하의 기사에서 "일본 반도체 산업은 영향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독자적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했다"며 "현대·기아차도 이제 일본차의 대체품을 파는 처지가 아니다"라고 평했다.
하지만 엔저가 예상보다 장기화하는 경우 수출이 버티리라 장담할 수 없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연말로 갈수록 엔화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나 당분간 지속될 엔화 약세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민석 교보증권 연구원도 "공급자들 간 제품의 질적 차이가 크지 않은 철강, 석유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