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양한 형태와 목적의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현행 인증제를 등록제로 개편하기로 했다. 시장 진입장벽을 낮춰 혁신기업과 1인 창업자들이 사회적 기업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도 독려하는 차원이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 상당수가 정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고 이들 중 절반가량이 적자인 상황에서 자칫 ‘유령 사회적 기업’을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진입장벽 낮추고 평가는 까다롭게
정부는 20일 국무회의를 열어 사회적 기업 육성법 일부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개정안은 인증제를 등록제로 개편하는 대신 평가 기준을 엄격히 해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게 골자다.
우선 조직 형태(법인), 사회적 목적 실현 등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기본요건은 유지하되 유급 근로자를 반드시 고용해야 한다는 등의 실적 요건은 폐지한다. 지금까지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으려면 본인 외에 근로자를 반드시 채용해야 했으나 앞으로는 1인 사회적 기업도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다만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요건은 까다로워진다. 지금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심사 후 지원 여부를 결정했으나 앞으로는 고용노동부가 평가하고 해당 지자체에 통보하는 식으로 바뀐다. 또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의무적으로 경영공시를 해야 하고 부정 수급 관련 사전교육도 받아야 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사회적 기업 육성 기본계획 발표 이후 공청회와 현장 의견을 수렴해 이번 개정안을 마련했다”며 “엄격한 인증 요건으로 다양한 목적과 형태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12년간 40배 증가
정부가 사회적 기업 등록제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그동안 수적으로는 크게 늘었으나 기업 형태와 목적이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등에 국한돼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회적 기업은 관련 법이 제정된 2007년 55개에서 지난달 말 기준 2249개로 늘어났다. 12년 만에 40배 이상 급증했다. 2017년 말 기준 전체 사회적 기업 매출은 3조5530억원, 기업 한 곳당 평균 매출은 19억5000만원이었다.
취약계층 일자리 문제와 사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법 취지대로 취약계층 고용창출 효과는 작지 않았다. 지난달 현재 사회적 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인원은 총 4만7241명이다. 이 가운데 장애인, 고령자 등 취약계층 근로자는 2만8450명(60.2%)에 달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회적 기업이 매년 200~300개씩 늘고 있는 가운데 기업당 평균 매출이 2014년 12억원에서 2017년 19억5000만원으로 증가했다”며 “흑자를 내는 기업 비율이 높아지고 고용창출 효과가 매년 꾸준히 커지고 있다”고 했다.
○年 1000억원 지원에도 절반이 적자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진입장벽 해체’가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으려는 기업 상당수가 사회적 가치 실현보다는 인건비 보전이나 공공기관 우선 구매 등 정부 지원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7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위탁을 받아 1289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증을 신청한 기업의 38%가 ‘정부 지원을 받거나 정부 인증으로 이미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사회적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36.2%였다.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면 최대 5년간 직원 인건비와 사업개발비 등 직간접 지원을 받는다. 지난해 말 기준 인건비와 사업개발비를 지원받은 곳은 각각 1447곳, 871곳(중복 가능)이었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지원금은 일자리 창출 지원금(약 800억원), 사업개발비(약 200억원) 등 매년 1000억원 규모다.
사회적 기업 절반가량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부정 수급 대책이 포함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사회적 기업의 49.5%가, 2017년에는 44.8%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적발된 부정 수급액은 2013~2017년 5년간 38억원이 넘었다.
백승현/노경목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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