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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기금 7조도 '밑빠진 독'…무슨 돈으로 '전국민 고용보험' 하나

입력: 2020- 05- 05- 오전 02:29
© Reuters.  고용기금 7조도 '밑빠진 독'…무슨 돈으로 '전국민 고용보험' 하나

코로나19 사태로 실직자가 늘면서 실업급여(구직급여) 재원인 고용보험기금의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 실직자 등이 4일 서울 장교동에 있는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실업급여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정부가 연일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전 국민 고용보험제’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영세자영업자 특수고용직종사자(특고) 등 모든 국민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청와대가 지난 1일 운을 띄우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4일 “모든 일하는 사람이 고용안전망을 통해 보호받게 할 것”이라며 “고용보험법 개정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고용보험기금이 거덜날 판이어서 재원 논의 없이 전 국민 고용안전망 보호 선언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올 들어 3월까지 구직급여 지급액이 2조4000억원을 넘어서면서 고용보험기금이 1000억원 이상 적자가 난 것으로 집계됐다. 그마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구직급여 지급분은 거의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이 때문에 향후 적자폭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구직급여 지급액 매달 기록 경신

고용부가 4일 임이자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 고용보험기금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적립금은 7조2458억원으로 지난해 말(7조3532억원)보다 1075억원 줄었다. 올 1분기 일반회계 전입금(5802억원)을 포함한 수입은 4조1439억원이던 반면 지출은 4조2514억원으로 더 많았기 때문이다. 지출 중 실직자에게 지급하는 구직급여가 2조4146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구직급여 지급액은 올해 1월 7336억원에 이어 2월 7819억원, 3월 8982억원으로 매달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고용보험기금은 말 그대로 ‘보험’이다. 근로자와 사업주가 평소 급여의 일정액을 보험료로 내며 근로자가 실직하면 보험금(구직급여)을 받는다. 평상시엔 각종 고용안정 사업을 운영한다. 고용보험기금은 실업급여 계정과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사업 계정으로 나뉜다. 근로자는 실업급여 계정 보험료만 월평균급여의 0.8%를 낸다. 사업주는 실업급여 계정에 0.8%를 내는 것 외에 고용안정 계정에도 사업장 규모에 따라 0.25~0.85%의 보험료를 낸다. 이렇게 해서 고용보험기금에는 연간 11조원 이상의 보험료가 쌓인다.

막대한 보험료 수입에도 고용보험기금 고갈 우려가 나오는 것은 지출이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사회안전망 강화를 이유로 구직급여 수급 기간을 기존 3~8개월에서 4~9개월로 늘리고 지급액도 재직 당시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올렸다. 3년간 33% 오른 최저임금도 구직급여 지급액을 늘리게 한 주원인 중 하나다.

○비상 걸린 정부…보험료 인상 가능성도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향후 실직자가 49만 명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고 3조4000억원의 고용보험기금 증액 방침을 발표했다. 4일부터 지급하기 시작한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도 기부를 받아 고용보험기금에 밀어 넣을 방침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추가적인 증액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고용보험기금은 연내 바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고용보험료는 인상된 지 1년도 안 돼 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고용보험 재정 악화 우려에 실업급여 보험료율을 기존 1.3%(노사 각 0.65%)에서 1.6%로 올린 바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와 여당은 연일 ‘전 국민 고용보험제’ 관련 발언을 내놓고 있다. 고용보험 울타리 확대에는 노사 모두 공감하지만 아직까지 재원 마련 방안 등에 관해 제대로 된 논의는 한 번도 없었다. 현재 고용보험 가입률은 전체 근로자의 약 50% 수준이다. 600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도 가입이 가능하지만 보험료가 전액 본인 부담이어서 가입률은 0.4%(1만5000여 명)도 안 된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기초 실태조사와 연구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라며 “사각지대 해소라는 필요성은 대체로 공감하지만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사각지대 해소 방안은 고용이 아니라 복지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칙적으로 취업의사가 없는 비경제활동인구는 고용정책 대상이 아니다”며 “그런 측면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는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게 노동경제학의 교과서적 이야기”라고 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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