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대만 TSMC가 올해 말까지 대규모 인력·설비투자에 나선다. 2위 삼성전자가 일본 정부의 ‘표적 규제’에 발목이 잡힌 틈을 타 격차를 더 크게 벌리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고객사들이 대거 TSMC로 옮겨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례적 대규모 인력투자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지난 26일 신입·경력 사원 3000명 이상을 모집하는 내용의 채용 계획안을 공개했다. 모집 분야는 반도체 장비 엔지니어, 연구개발(R&D) 인력, 생산 라인 관리자, 프로세스 엔지니어 등 전 직군에 걸쳐 있다.
TSMC가 3000명 이상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나선 건 1987년 창사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사업 성장과 기술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규모 신규 채용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TSMC는 대규모 설비투자도 진행 중이다. 지난 2분기(4~6월) TSMC의 영업이익(약 2조9070억원)은 전년 동기보다 9.6% 줄었지만, 설비투자액(약 4조4348억원)은 작년 2분기보다 94.9% 늘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TSMC는 올해 말까지 추가로 약 5조5000억원 규모 설비투자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지난 18일 열린 2분기 실적발표회에서 “미국 (파운드리)설비를 인수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EUV ‘기술 우위’ 노려
TSMC가 대규모 인력·설비투자 계획을 공개한 것을 두고 반도체업계에선 ‘삼성 견제’ 의도가 짙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TSMC는 지난 1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위(48.1%)지만, 삼성전자(점유율 19.1%)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올초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기술을 활용해 회로 선폭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에서 반도체를 생산했다. 선폭이 미세해질수록 반도체 칩 크기를 줄이고 전력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삼성전자는 퀄컴, IBM (NYSE:IBM) 등을 파운드리 고객으로 유치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지난 4일 일본 정부가 7㎚ EUV 파운드리 공정에 쓰이는 포토레지스트(감광액)의 한국 수출을 끊으면서부터다. 경제계에선 “일본이 삼성전자의 미래(파운드리 사업)를 급습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삼성전자의 포토레지스트 재고는 길게 잡아야 2~3개월치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체 고위 관계자는 “TSMC가 5㎚ EUV 공정을 내년 상반기부터 가동하고 3㎚ 공정 R&D도 하고 있다는 얘기를 현지 언론에 흘리고 있다”며 “대내외에 건재함을 과시하는 동시에 삼성전자를 따돌리고 ‘기술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삼성의 파운드리 고객 이탈 우려
삼성전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이달 초부터 파운드리 고객사에 “양산 일정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서신을 보내고 오는 9월 일본에서 ‘파운드리 포럼’ 행사를 예정대로 열겠다고 발표했지만 삼성전자엔 생산 차질 여부를 확인하는 문의가 계속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추가 재고 확보와 공정 효율화에 나서면서 일본산을 대체할 수 있는 제품 테스트를 실시 중이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선 일본의 규제가 장기화하면 삼성전자의 EUV 공정이 멈춰서고 애써 확보한 고객들도 다 떠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파운드리산업 특성상 한 번 떠난 고객을 다시 유치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 반도체학과 교수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인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사업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며 “정부가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를 가능한 한 이른 시점에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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