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사진=뉴시스
[이코노믹리뷰=도다솔 기자] 현대중공업의 공모주 청약에 56조원이 넘는 돈이 몰렸다. 최근 진행한 기업설명회에서 현대중공업은 수소 선박을 중심으로 암모니아, 전기 추진선 등 차세대 선박 개발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7~8일 이틀간 실시한 공모주 일반 청약 결과, 상장주관사 8개 증권사를 합쳐 총 56조562억원의 증거금을 모은 것으로 집계됐다. 청약 건수만 171만 건에 달한다.
이는 코스피 시장의 기업공개(IPO)에서 역대 여섯 번째로 많은 수준이며 지난 7월 진행된 카카오뱅크 공모 청약 증거금 58조3,020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현대중공업 청약 흥행 배경에는 글로벌 1위 조선사라는 높은 인지도와 조선 업황이 회복세에 접어든 점이 개인들을 매료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전통산업인 조선업은 4차산업에 비해 미래가 밝은 분야는 아니었기 때문에 IPO는 흥행하지 못할 것이란 일부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친환경 선박과 디지털 전환으로 탈바꿈한 미래 조선소 구축 청사진을 내놓으며 이 같은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차세대 총수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의 ‘오너 세일즈’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정기선 부사장이 국외 메이저 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 대상 기업설명회에 직접 참여하며 친환경 선박개발 등 미래 비전을 적극 강조한 것이 통했다는 것.
특히 미래 사업을 총괄하는 정 부사장이 직접 질의응답을 통해 자산운용사 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일부 의문점까지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 정 부사장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국내 주요 기업 총수가 참여하는 수소기업협의체 출범식에 참여해 수소 사업에 대해 언급했다.
이날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이 가장 잘하는 게 수소 저장 분야”라며 “그룹 계열사들의 인프라를 토대로 국내 기업과 시너지를 발휘해 수소경제 활성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3대 핵심사업. 자료=현대중공업
최근 현대중공업은 친환경 미래 선박 기술 개발과 스마트 조선소 구축, 해상 수소 인프라 투자가 현대중공업의 미래를 이끌 핵심 3대 사업으로 제시했다.
현대중공업은 최대 1조800억원 규모인 IPO 조달자금 중 약 7,600억원을 초격차 기술 확보에 투자할 계획이다. 세부적으로는 친환경·디지털 선박 기술 개발에 3,100억원,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 3,200억원, 수소 인프라 분야에 1,300억원을 투자한다.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친환경 선박 분야에선 수소와 암모니아 선박, 전기추진 솔루션, 가스선 화물창 개발 등에 집중해 고부가가치 선종의 수익성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또 급성장이 예상되는 자율운항 시장 진출을 가속화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이 구상하는 친환경 선박은 기존 화석 연료 대신 수소와 암모니아를 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수소는 현대중공업이 추진하는 핵심 신사업 중 하나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수소 생산과 운송, 활용까지 밸류체인 전반을 아우르는 ‘수소 드림 2030’ 비전을 공개하며 수소 생태계 구축에 대한 청사진을 공개했다.
해양플랜트 사업 경험을 살려 2030년까지 그린 수소를 생산하고 자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수소 운반선을 건조해 전 세계로 수소를 운송하겠다는 비전이다.
기존 내연기관보다 에너지 효율을 40% 이상 높일 수 있는 수소선박도 2030년 이내에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개발 중이다.
지난 6일 현대중공업의 계열사 한국조선해양(009540)은 포스코,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하이리움산업 등과 ‘선박용 액화수소 연료탱크 공동 개발’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수소선박 핵심기술 개발에 나섰다. 이를 통해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하반기까지 소형 선박용 액화수소 연료탱크를 시범 제작하고 다양한 테스트 과정을 거쳐 향후 대형 선박용까지 확대 개발하기로 했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상업용 액화수소운반선에 대한 선급 기본인증을 획득했으며 지난 3월에는 수소선박 국제표준 개발에도 나서는 등 수소 선박 상용화를 통한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한국조선해양과 함께 업계 최초로 친환경 암모니아 연료공급시스템에 대한 개념설계 기본인증(AIP)을 획득하며 암모니아 추진선 상용화에 한발 다가갔다.
이번에 개발한 연료공급시스템은 항해 중에 자연 발생하는 암모니아 증발가스를 활용해 배기가스 내 질소산화물을 제거하고 잔여 증발가스는 엔진 연료로 사용하는 고효율 친환경 설비로, 극소량의 암모니아도 외부 유출 없이 완전 차단할 수 있는 이중누출방지 가스처리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암모니아 추진선은 연소 시 이산화탄소와 황산화물 등을 전혀 배출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를 통한 생산이 가능하다. 또 LNG보다 보관과 취급이 편리해 기존 LNG선을 잇는 차세대 친환경 선박으로 주목받고 있다. 2024~2025년이면 암모니아 추진선을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