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의 하늘길이 일본에서 베트남 대만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3국으로 이동했다. 지난해 하반기 한·일 경제전쟁이 터진 이후 ‘노(NO) 재팬’ 운동이 거세지면서 일본으로 떠나는 여행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동남아를 찾는 겨울철 여행객 수요까지 겹치면서 LCC들이 일제히 동남아 3국으로 몰리고 있지만 공급 과잉이라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일본 빈자리에 ‘베·대·필’이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LCC의 일본 노선 운항 횟수는 일본 여행 자제 운동이 본격화한 지난해 7월을 기점으로 반토막 났다. LCC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408회(작년 6월 말 기준)였던 일본 노선 주당 운항 횟수가 254회(12월 말 기준)로 급감했다. 2, 3위인 진에어와 티웨이도 6개월 만에 각각 318회에서 126회, 177회에서 87회로 크게 줄었다.
일본의 빈자리는 동남아 3국이 채웠다. 국내 LCC 여섯 곳의 베트남 대만 필리핀 노선 운항 횟수는 최대 72%까지 늘어났다. 이스타항공은 1주일에 94회(6월 말 기준) 운항했던 동남아 3국 노선을 162회까지 늘렸다. 제주항공도 1주일에 평균 119회였던 ‘베·대·필’ 운항을 158회까지 끌어올렸다.
동남아 3국 여행객은 일본 여행 자제 운동이 벌어지지 않았던 2018년 약 720만 명(8~12월)에서 지난해 약 900만 명(8~12월)으로 증가했다. 전체 여행객 수에서 24%를 차지해 일본(15%)을 처음으로 제쳤다.
동남아 3국이 일본의 대체지로 부상한 건 가까운 거리 덕분이다. LCC들이 보유한 항공기는 대부분 B737NG, A320 등 단거리 노선에 특화된 기종이다. 이들은 LCC 매출의 20%가량을 차지하던 일본 노선에 주로 투입됐다. 일본 노선이 줄어들면서 항공사들은 단거리 기종을 대체 투입할 수 있는 동남아로 눈을 돌렸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비자 발급이 번거롭고 홍콩은 잇따른 시위로 안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동남아 3국이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일본 없인 힘들다”
동남아 노선이 일본을 완전히 대체할 ‘포스트 재팬’이 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LCC들이 일제히 일본 노선을 줄이고 동남아 노선으로 몰리면서 경쟁이 심해진 탓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수익성 측면에서 동남아 노선을 1회 운항하는 것보다 가까운 일본 노선을 2~3회 운항하는 게 낫다”며 “LCC들이 한꺼번에 동남아로 몰리다 보니 공급이 과잉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동계 시즌(10월 말~이듬해 3월 말)이 지나면 동남아 노선 수요가 다시 줄어드는 점도 고민이다. 동계 시즌에는 따뜻한 동남아 여행지가 인기여서 노선을 늘릴 수 있었지만, 오는 3월 말 이후 하계 시즌부터는 동남아 수요가 줄어든다. 올해 일본 여행 수요가 다시 살아나지 않으면 LCC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년 하계 시즌에 일본으로 떠난 여행객이 전체 여행객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단거리 노선으로 먹고살던 LCC들이 살아남으려면 중·장거리 노선 등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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