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있던 신성장 연구개발(R&D) 심의위원회가 기획재정부로 이관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산업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재부가 협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일방통행식 발표를 했다”는 게 산업부 주장이다. 부처 내부에선 “탈(脫)원전 등 에너지 전환정책에 매몰돼 산업정책을 등한시한 결과”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 7일 입법 예고한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신성장동력·원천기술심의위원회를 산업부에서 기재부로 이관하기로 했다. 이 위원회는 기업이 신청한 연구개발비와 사업화 시설투자 금액이 신성장 분야 R&D 세액공제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심의하는 곳이다. R&D 세액공제 대상이 되면 중소기업은 연구·인력개발비의 30~40%를, 대기업은 20~30%를 법인세에서 공제받는다. 그만큼 기업의 관심이 크다. 당초 신성장산업 육성을 위해 산업부 주도로 지난해 처음 꾸려졌는데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출범 1년 만에 기재부 산하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위원장은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이 맡아왔다.
기재부 관계자는 “R&D 비용의 범위 등 세법 해석 사항을 기술 전문가로 구성된 산업부 소속 위원회에서 검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앞으로 기재부 세제실장이 위원장을 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15명으로 구성되며 이 중 9명이 민간위원이다. 지금은 산업부가 민간위원을 선임하나 시행령이 개정되면 기재부가 선임권을 가진다.
산업부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직 협의가 끝나지 않았는데 기재부가 일방적으로 발표까지 해버렸다”며 “세법 해석이 필요한 건 맞지만 1차적으로는 해당 기술이 신성장기술이냐, 정부 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가치있는 기술이냐 등의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의 한 고위공무원은 “기술심사 등은 산업부의 고유 업무 영역인데 세법 시행령 개정권을 틀어쥔 기재부가 부처 이기주의를 내세워 ‘밥그릇 뺏기’를 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부는 입법예고 기간(이달 29일까지)이 남은 만큼 기재부와 협의해 바로잡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산업부 내부에선 ‘스스로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반성의 시각도 있다. 산업부 한 공무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말 산업부 업무보고 때 오죽하면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겠느냐”며 “정권 초기 오로지 탈원전 정책에 몰두하다 조직이 스스로의 색깔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관가에서는 “갑의 위치인 기재부가 다른 부처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발표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재부는 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일감몰아주기 과세 범위를 조정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역시 관계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와 제대로 된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언론 보도 이후 공정위 관계자들이 기재부에 과세 범위 조정의 배경과 근거 등을 문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태훈/서민준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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