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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인임을 밝히면 해외에서 사업할 때 인식이 좋지 않아 최근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출신 국가를 숨기는 추세”라고 전했다. 해외 프로젝트가 강도 높은 규제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 제한적이고 가상자산사업자(VASP) 라이선스 취득도 까다로워 한국 프로젝트와 협업하길 꺼린다는 설명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상자산 거래량과 강력한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한국은 그동안 해외 프로젝트·기업들이 탐내는 시장이었다. 올해 1분기에는 전 세계 가상자산 거래에서 원화가 미국 달러를 제치고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해외 기업의 한국 진출이 규제의 문턱에 막혀 잇따라 무산되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하고 있다. 글로벌 거래소 바이낸스는 지난 2022년 국내 거래소 고팍스를 인수했지만 VASP 변경신고에 진척이 없자 고팍스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다. 올해 초 한국에서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하려던 해외 거래소 크립토닷컴도 금융당국의 제동으로 출시를 무기한 연기했다.
“한국에서 사업할 실익이 없다”는 국내 플레이어의 부정적 의견도 많다. 해외 프로젝트가 고생 끝에 VASP 라이선스를 취득해도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영위할 수 있는 사업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제정된 특금법은 가상자산 거래소와 지갑, 커스터디(수탁) 등 일부 서비스만 VASP로 규정했다. 할 수 있는 사업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규제 준수 비용이 많이 드는 점도 혁신적인 신생 프로젝트가 등장하기 어려운 점으로 꼽힌다.
‘유망주’로 불리던 한국 시장이 글로벌 시장에서 외면받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 그럼에도 시장 규율 내용을 담은 2단계 법안은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블록체인 육성 공약도 ‘공수표’에 불과한 실정이다. 해외에선 비트코인(BTC)·이더리움(ETF)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가 활발하지만 국내 금융당국은 이를 금지하며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코인 쇄국”이라며 “당국이 국부 유출을 걱정하기보다 해외 자본을 적극 받아들여 한국 블록체인 시장의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시장 규율을 위한 2단계 법안을 서둘러 마련하고 당정 모두 허울뿐인 블록체인 공약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