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롱가포, 필리핀, 10월19일 (로이터) - 미국 퇴역 군인이 운영하는 필리핀 수빅 만 소재 주점에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사진이 찍힌 커피잔, 사진, 모자 등이 진열되어 있지만 주된 화제는 다가오는 미국 대선이 아니다.
이곳에서 주로 화제가 되는 것은 미국에 반목하고 중국과 급격하게 가까워지고 있는 필리핀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이다. 이로 인해 이 술집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과거 미 해군 기지 수빅만 기지 주변에 정착한 미국인들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이 기지 인근 도시 울롱가포에 5년간 거주하고 있는 퇴역 해군 상사 잭 워커는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어느 날 두테르테 대통령이 갑자기 미국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명령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00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 필리핀과 미국은 식민지, 전쟁, 반란, 긴밀한 경제적 유대 등의 역사를 공유해 왔다. 이 같은 오랜 역사는 임기 3개월째를 맞은 두테르테 행정부가 양국 관계를 재검토하면서 하루아침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일련의 성명을 통해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마약과의 전쟁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이유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마닐라 주재 미국 대사를 모욕하는 발언을 했다. 지금까지 신임 대통령이 벌여온 마약과의 전쟁으로 2000명 이상의 마약 사용 및 밀매 혐의자들이 살해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옥에나 가라"고 말하고 미국과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수 주간에 걸쳐 반미 발언을 토해놓은 후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이 미국과의 기존 방위조약과 군사적 연합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엡 힌치리프 필리핀 미국 상공회의소 전무이사는 이 같은 발언들로 필리핀에 있는 미국인들과 미국 기업체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입을 열고 미국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할 때 마다 내가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는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기술, 금융 서비스, 제조업체들을 대표하는 세 명의 무역 대표단이 최근 몇 주에 걸쳐 필리핀 방문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적어도 두 개의 미국 회사들이 "두테르테 대통령의 반미 정서로 인해" 필리핀 대신 베트남과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힌치리프 전무이사는 상세한 추가 설명이나 회사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을 1898년 획득한 이후 1946년 필리핀의 독립을 인정할 때까지 필리핀을 실효지배 했다. 약 400만 명의 필리핀계 이민자들이 미국에 살고 있고 이는 미국 내 가장 큰 소수민족 중 하나에 속한다. 또한 대부분 퇴역 군인들인 약 22만 명의 미국인들이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이외에 약 65만 명의 미국 관광객들이 매년 필리핀을 방문하고 있다.
(편집 손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