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3일 리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 단위 변경)의 추진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국회에 공론화를 요청했다.
박운섭 한국은행 발권국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 정책토론회에 나와 한은의 공식 입장을 묻는 질문에 “언젠가는 리디노미네이션을 해야 한다”며 “국회가 공론화해달라”고 말했다. 박 국장은 “한은은 리디노미네이션 준비를 10년 이상 해왔다”며 “입법을 거쳐야 하는 만큼 국회가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원내수석부대표)은 “리디노미네이션이 정쟁의 대상이 돼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초당적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도 “지금이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할지 논의할 적기”라고 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리디노미네이션 논쟁이 다시 촉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화폐개혁,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앞줄 가운데)와 여야 국회의원 및 전문가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심기준 더불어민주당,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 박 전 총재, 이원욱 민주당, 김종석 한국당, 최운열 민주당 의원. /이원욱 의원실 제공
한은 “언젠가는 해야 할 일”
박 국장은 이주열 한은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입장을 번복한 것에 “국회의 입법을 거쳐야 하는 내용이 있고, 절차적인 문제 때문에 저희는 말을 자제하고 있다”며 “내용은 숙지를 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이 총재는 지난 3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밝혔지만 논란이 일자 “가까운 시일 내 추진 계획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한은 측은 토론회에서 발제와 토론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논의 내용을 청취하기 위해 토론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한은의 주무국장이 전향적 발언을 내놓은 것은 충분한 사전논의가 있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토론회에 참석해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 별의별 억측과 가짜뉴스가 굉장히 많고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며 “‘0’ 세 개 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안 해도 언젠가 해야 하는 일이고 시기의 문제”라며 “기존 1000원을 1환으로 바꿔 화폐에서 ‘0’을 세 개 떼어내는 간단한 절차가 돼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사이선 찬반 팽팽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 차원의 충분한 사전 논의와 국민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박 전 총재는 물가 상승 우려에 대해서는 “자동화기기 교체 등 관련 비용이 적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가 될 수 있다”며 “이를 비용 측면에서 볼 것인지, 경기부양 측면에서 볼 것인지도 국민이 판단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임동춘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은 “공론화 및 제도 준비에 4~5년, 법률 공포 후 최종 완료까지 약 10년이 걸리는 장기프로젝트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기대효과는 최소 5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 팀장은 “업무처리 간소화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가 최소 2조원”이라며 “은행의 자기앞수표 발행 등 연간 6000억원이 드는 관리비용을 감안할 때 5년간 약 3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 의견도 팽팽하게 맞섰다. 홍춘욱 숭실대 겸임교수는 “최근 10~20년 내 화폐개혁을 단행한 나라 중 선진국이거나 경제가 활력을 보이는 곳이 거의 없다”며 “리디노미네이션으로 인한 낙인효과, 즉 대외의 평가 악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양오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은 “남북이 통일되면 사용할 단일화폐, 그리고 가상화폐·현금 없는 사회·디지털 경제 등으로 인한 글로벌 화폐화가 다가오는 만큼 단순한 화폐단위 변경이 아니라 더 큰 차원의 화폐개혁이 논의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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