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해야 합니다. 사태가 중장기화하면 우리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인한 파장이 길어질수록 기업과 국민의 피해만 커집니다. 경제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윤덕민 전 국립외교원 원장)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과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 원장이 일본의 대한(對韓) 경제보복과 관련해 ‘경고음’을 울렸다.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일관계를 통해 본 우리 경제 현황과 해법’ 특별대담에서다. 사회는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맡았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왼쪽부터)과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 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한·일 관계를 통해 본 한국 경제의 현주소와 해법’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최악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
1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담에서 윤 전 장관은 일본 경제보복이 한국 경제 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은 “경제보복 여파로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며 “여기에 외환 금융위기까지 겹치면 복합적인 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우리 기업이 죽고 국민이 죽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윤 전 원장도 한·일 경제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전 원장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해야겠지만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국가 간 보상 문제가 끝났다”며 “법원이 국가 간 조약을 뒤집는 판결을 낸 사례는 거의 없다”고 했다. 이어 “한국 내 압류된 일본 기업의 재산을 현금화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경제보복 수위가 높아지고 한·일 경제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경제보복 문제 해결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 전 장관은 “일본 경제보복의 원인은 정치, 외교 분야에 있는데 책임은 기업이 지고 해결도 기업이 하라고 하고 있다”며 “이 문제는 기업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윤 전 원장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 감정적으로는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현재 한·일 무역 마찰이 감정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
특사 파견도 검토해야
윤 전 장관은 정부가 조속히 나서서 ‘글로벌 분업 체제’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소재부품을 만들면 이를 이용해 한국이 중간재를 생산하고, 중국은 최종 완성품을 만드는 체제다. 윤 전 원장은 “한국이 비교 우위가 있는 중간재 생산을 중단하고 소재·부품 산업에 매달리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며 “비용 대비 효용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차제에 한·중·일 동북아시아 경제 공동체를 구상해 볼 것을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중장기적으로는 부품·소재 산업의 육성을 위한 기초과학 분야나 원천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은 “일본은 물리학, 화학 등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21명에 달한다”며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이 뛰어나야 소재·부품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내적으로는 현재 경제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문제 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 전 원장은 외교적인 해결책을 제안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정부가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외교가 빨리 복원돼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이낙연 국무총리를 특사로 보내고 궁극적으로는 두 국가 정상이 만나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중심이 된 재단을 설립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보상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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