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정예린 기자] 삼성전자가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과 법적 분쟁을 겪고 있는 미국 퀄컴이 패소할 것을 우려해 계약 기간을 단축했으나, 예상과 달리 퀄컴이 승소하면서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30여년 동안 이어져 온 삼성전자와 퀄컴 (NASDAQ:QCOM) 간 동맹에 균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향후 협력 관계의 향방에 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퀄컴과의 칩 공급 계약 기간을 기존 3년에서 2년으로 줄였다. Arm이 퀄컴을 상대로 제기한 칩 기술 관련 특허 침해 소송 여파에 따른 공급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와 퀄컴 간 계약 기간 축소의 단초가 된 것은 지난 2022년 시작된 Arm과 퀄컴 간 특허 분쟁이다. 그해 8월 Arm은 퀄컴이 인수한 칩 설계업체 '누비아'의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누비아가 퀄컴의 자회사임에도 불구하고 Arm에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설계자산(IP)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소송이 시작된지 2달 뒤인 같은 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KS:005930) 부회장과 Arm을 소유한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서울에서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르네 하스 Arm CEO를 비롯해 양측 고위 임원이 동석했다.
손 회장은 이 회장에게 퀄컴과 Arm의 라이선스 계약이 2025년 만료될 예정이라고 전달했다. 사실상 퀄컴의 라이선스 만료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며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Arm은 이를 통해 삼성전자와의 직접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Arm을 대적할 경쟁사로 떠오르고 있는 퀄컴의 입지를 약화하려는 전략이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퀄컴은 이에 반박해 크리스티노 아몬 CEO가 직접 삼성에 Arm과의 라이선스가 2033년까지 유효하다고 보장했다. 퀄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퀄컴과의 계약 조건 재검토에 착수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공급망 유연성을 확보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이 사실은 Arm과 퀄컴 간 재판 과정에서 아몬 CEO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하지만 Arm은 퀄컴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일부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했다.
문제는 삼성전자와의 우려와 달리 퀄컴이 Arm과의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것이다. Arm이 불복해 재심을 청구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향후 변동 가능성이 있지만 Arm이 재판 결과를 뒤집지 못한다면 공고했던 삼성전자와 퀄컴 간 칩 협력 관계가 미묘하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퀄컴은 1990년대 중반부터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 퀄컴의 스냅드래곤 칩셋을 갤럭시 스마트폰 시리즈 주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로 활용하며 협력 관계를 확장했다. 자체 개발 칩 '엑시노스'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냅드래곤과 병행 사용하며 동맹 관계를 다져왔다. 특히 지난 2023년 출시한 갤럭시 S23 시리즈는 지역에 관계없이 전 모델에 모두 스냅드래곤8 2세대 칩을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