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는 등 정국이 극도로 불안정해졌고 원화 가치는 거센 하방 압력에 직면했다. 외환방파제로 불리는 외환보유액은 외환당국의 달러 매도에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1월말 기준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3억9000만달러로 전월 말(4156억9000만달러)보다 3억달러 줄었다. 지난 10월 42억8000만달러 감소 이후 두달 째 감소세로 7월 4135억 달러 이후 잔액 기준 최저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후 달러 강세에 원/달러가 1400원대를 등락하자 외환당국이 달러 매도에 나섰고 기타 통화 외화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 감소에 따라 외환 보유액이 줄었다.
달러화지수는 10월 말 103.99에서 지난달 말에는 106.05선까지 2.0% 올랐다. 같은 기간 유로화는 2.8% 떨어졌고 파운드화는 2.1% 내렸다. 호주달러화는 1.1% 하락했다. 반면 엔화는 1.2% 상승했다. 원/달러는 1379.9원에서 1394.7원으로 치솟았다.
외환보유액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국채 및 정부 기관채, 회사채 등 유가증권은 3723억9000만달러로 전월(3732억5000만달러)보다 8억6000만달러 줄었다. 예치금은 7억달러 늘어난 191억3000만달러로 집계됐다.
한은 관계자는 "달러 강세에 따른 운용수익 증가와 금융기관의 예금 증가 등 외화예수금이 플러스 요인으로 기타자산의 외화 환산은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통화스와프 연장… "650억 달러까지 늘려야"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과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은 외환보유액 중요성이 커졌다.
한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외환보유액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2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7.5%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이 비율이 18.4%였다.
순대외금융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7799억달러에 달한다. GDP대비 순대외금융자산 비율은 45.5%로 2008년말(-6.7%) 보다 40% 가량 개선됐다. 대외지급 능력을 보여주는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도 올해 3분기 37.8%를 기록하면서 2008년 4분기(72.4%)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환보유액 외에 대외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안전판도 마련했다. 한국은 캐나다와 스위스 등 8개 국가와 양자 통화스와프 계약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3(한·중·일)과는 다자 계약을 체결해 유사 시 외화 조달이 가능하다. 또 외환보유액에 포함되지 않은 국민연금과의 통화스와프 자금도 만기 시 전액 환원돼 외환보유액으로 반영된다.
최근 한은은 국민연금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1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양 기관이 일정 기간 서로 다른 통화를 맞교환하는 것으로 스와프 체결에 따라 국민연금은 달러가 필요할 경우 한은에 원화를 건네고 외환보유액에서 달러를 공급 받을 수 있다.
한은과 국민연금의 스와프 한도는 일단 현재 한도(500억 달러)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두 기관은 2022년에 한도를 100억 달러로 설정했다가 지난해 350억 달러, 올해 6월 500억 달러로 2년 연속 한도를 역대 최대치로 늘린 바 있다. 한은은 국민연금이 필요로 하는 달러를 외환보유액에서 공급해 국민연금발 환율 추가 상승을 방지할 수 있다.
일각에선 외환당국이 외환·금융시장 불안감을 잠재우고 환율 방어 효과를 확대하기 위해 스와프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민연금의 일일 환전 규모는 1억~2억 달러로 해외투자가 늘어날 경우 환전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환율 변동성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경우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확대와 같은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며 "스와프 한도를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 수준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