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맺은 새로운 무역협정이 ‘트럼프의 완벽한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한국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협정은 자동차 관세 부과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데다 환율 조작을 금지한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어 향후 우리나라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타결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통해 자동차 분야에서 자국에 유리한 조항을 상당수 반영했다.
우선 미국에 수출하는 승용차의 40%는 시간당 16달러 이상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생산한 부품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멕시코 자동차업계의 평균 임금이 시간당 3.5달러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미국산 부품을 쓸 것을 강요했다는 평가다. 수출 자동차의 역내 부품 비중을 62.5%에서 75.0%로 늘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규정은 멕시코, 캐나다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파는 한국 기업에도 해당된다.
미국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협정문 부속 서한(side letter)에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자동차 관세 부과’를 조건부로 실행하겠다는 내용을 적시했다. 연간 260만 대가 넘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232조 조치를 문서로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자동차 232조를 협정문에 명시한 이상 일본, 유럽, 한국 등과도 이를 지렛대 삼아 협상에 나설 것”이라며 “자동차 관세 면제를 조건으로 수입 제한 쿼터 등을 받아 내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은 자동차 관세의 완전 면제를 주장하는 우리나라엔 악재다.
미국이 협정문 본문에서 많은 양보를 받아 냈음에도 추가로 조건부 232조 조치를 반영한 것은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무역협정과 232조 조치는 별개라는 메시지여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때 미국의 자동차 분야 요구를 많이 수용했으니 자동차 관세를 추가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우리 쪽 논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협정문에 ‘환율 조작 금지’를 명시한 점도 눈에 띈다. USMCA는 ‘협정 당사국은 환율이나 국제통화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을 피한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매달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무역협정과 환율 문제는 결부시키지 않는다는 국제 관례를 깬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원칙적인 선언인데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는 멕시코, 캐나다가 지금도 하고 있는 조치여서 실효성은 적다”며 “오히려 위안화 약세를 유도하는 중국 등 다른 나라를 겨냥해 경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수차례 환율 관련 문제를 지적당해왔다. 이 때문에 향후 환율조작국 지정 등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USMCA 협정문안이 당초 예상보다 캐나다, 멕시코에 불리한 내용이 많아 놀랐다”며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한 경계감이 커진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USMCA는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상식을 파괴하는 조치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며 “한국도 산업,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역량을 동원해 통상 압박을 줄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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