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국내 유통업계에는 ‘인사 태풍’이 불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상당수 교체됐다. 강희석 이마트 사장, 김형종 현대백화점 사장 등 새로운 인물들이 혁신과 재도약을 이끌게 됐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유통업 비중이 80~90%에 이르는 두 그룹의 경영자들이 내놓은 신년사에선 위기와 정체를 벗어나기 위한 ‘전략의 전환’이 읽힌다. 혁신에 대한 절박함, 변화에 대한 갈망이 행간에 녹아 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자 임직원에 대한 독려라는 분석이다.
○“이마트, 대한민국 장보기 지킴이 돼야”
정 부회장은 외부와 활발히 소통하는 경영자다. 그러나 작년에는 달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고, 기자들 앞에 나서지도 않았다. 그의 신년사가 주목됐다.
정 부회장의 신년사에선 ‘고추냉이 속에 붙어사는 벌레에는 세상이 고추냉이다’라는 유대인 속담이 눈길을 끈다. 그는 “관습의 달콤함에 빠지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가 사는 작은 세상만 갉아 먹다 결국 쇠퇴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왜 고추냉이와 같은 비유를 사용했을까. 이마트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 오프라인 유통의 혁신을 20여 년간 이끌던 이마트는 작년 2분기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냈다. 증권사들은 올해 이마트의 영업이익이 2000억원 안팎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한때 8000억원의 이익을 냈던 이마트는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정 부회장이 컨설팅회사 출신을 대표로 발탁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이마트에서 ‘고추냉이 벌레’를 봤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성공의 틀에서 효율성만 추구하다 보면, 모든 것을 현재의 조건에 맞도록 최적화한다. 이 과정에서 고객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과거 성공의 기억에 갇힌 답답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위기 극복을 위해 ‘본연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이마트엔 ‘대한민국 최고의 장보기 지킴이’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올해 이마트의 신선식품 분야에선 새롭고 참신한 상품들이 매대를 채울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오랜 관계를 맺어온 협력사를 일부 교체할 가능성도 있다.
○“신중함보다 기민한 실행이 중요”
정 회장의 절박함도 이에 못지않다. ‘평이한’ 지난해 신년사와 달리 올해는 곳곳에서 ‘절절함’이 묻어났다. 그는 통절한 ‘자기 반성’과 ‘질책’으로 신년사를 시작했다.
우선 “수년간 경영방침을 통해 성장전략 수립과 사업방식의 변화, 조직문화 개선을 추진했지만 아직까지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미래 성장을 위한 준비도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미래 성장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구성원은 막연한 불안감을 가진 채 도전을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 트렌드, 유통 환경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바뀌는데, 현대백화점그룹이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정 회장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는지’ 자문하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며 “내실 경영도 필요하지만, 성장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나친 신중함보다는 기민한 실행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정 회장은 “시장과 고객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해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고, 최적의 타이밍에 실행하기란 불가능하다”며 “기민한 판단을 통해 빠르게 실행하면서, 계획을 보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이 명확히 ‘성장’에 방점을 찍은 이상, 현대백화점그룹은 올해 ‘확장’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패션기업 한섬, 가구회사 리바트 등을 인수해 주력 계열사로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현대백화점은 경쟁사들과 달리 출점 계획도 공격적으로 세우고 있다. 올해 대전과 경기 남양주에 두 곳의 아울렛을 낸다. 내년 초에는 서울 여의도에 서울 최대 규모의 백화점을 열 예정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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