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일 상명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가 1일 인포스탁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근화 기자
[인포스탁데일리=김근화 기자] '강릉 손자 사망', '시청역 역주행 참사' 등 최근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늘고있지만, 이를 입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전문적인 기술을 요구하는 자동차 특성상 제조사와의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해 아직까지 국내에서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단 한차례도 없다. 법 개정을 통해 소비자 권리를 보장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지만 제조사의 적극적인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1일 와의 인터뷰를 통해 반주일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유지하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행태를 지적했다. 반 교수는 "국내 제조사들은 안전문화가 결여돼 있다"며 "급발진 사고 자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경영상 비밀 유지라는 이유로 데이터 제공에도 소극적인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는 사고기록장치(EDR)를 중점적으로 활용해 사고를 조사한다. EDR은 전자제어장치(ECU)의 말단 기록장치이며, ECU로부터 오는 정보를 전달받는다. 결과적으로 EDR의 본질은 ECU인데, 이에 대한 조사없이 EDR만으로 사고를 조사하는 방식으로는 어떠한 진실규명도 불가능하다고 반 교수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100% 신뢰할 수 없는 EDR이 제조사의 면죄부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 교수는 "ECU에 들어가 있는 소프트웨어를 열어봐야 하는데 그 소프트웨어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는 결국 제조사밖에 알 수 없다"며 "소프트웨어에 대한 조사 없이 그냥 사람이 밟은 것으로 기록됐다고 결론나게 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급발진 재판의 현실"이라고 답했다. 실제 미국 북아웃 소송의 경우에는 원고 측 전문가가 토요타 소프트웨어를 뜯어본 결과, 엄청난 버그들을 발견한 바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제조물책임법 개정을 통해 제조사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고 적극적으로 정보 공개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반교수는 "다만, 소프트웨어를 공개한다고 해도 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라며 "미국에서는 은행에서 소송 관련 비용을 미리 빌려주는 제도가 있으나 우리나라는 이같은 제도가 전혀 정착 돼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며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에 부가 조항으로 자동차와 같은 '고난도 기술적 상품(Complexity)'에 대해서는 입증 책임을 완화하기로 한다는 구체적인 조항을 명시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한,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자장치를 "다중화"해서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중화는 결함이나 고장에 대비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두 개 이상의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반 교수는 "다중화 기술은 어렵지 않으나 돈이 많이 든다"며 "사고에 대한 심각성을 얼만큼 반영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제조사는 이를 그냥 두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급발진이 없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급발진이 생기면 운전자가 잘못 밟았다는 말이 통하지만 자율주행 시대에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율주행을 키고 갔는데 급발진이 발생하면 100% 제조물 책임이기 때문에 제조사들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반 교수와의 일문일답.
Q. EDR 기록만으로 급발진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는
A. EDR은 말단 기록장치이며 ECU로부터 오는 정보를 통신을 통해 전달받는다. 정보를 보내는 곳에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 EDR에 잘못된 정보가 기록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EDR만 살펴보는 것은 눈에 드러나는 결과만을 보는 것으로, 원인은 전혀 살펴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또한, 현행 EDR 5초는 사고 분석에 턱없이 모자라다. 이에 미국에서는 EDR기록시간을 20초로 늘리고, 기록주기도 0.1초 단위로 늘리기로 결정됐다. 데이터의 양적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조그만 디스크에도 영화 100개가 들어가는데 EDR를 5초만 저장하고 있는 것은 말이 안된다.
Q. 그렇다면 ECU 소프트웨어를 공개하면 되는 것인가
A. ECU에 들어가 있는 소프트웨어를 열어보자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결국 제조사밖에 모른다. 국과수도 모른다. 사고가 났을 때 국과수는 단 한 줄의 소프트웨어 코딩도 열어보지 못한다. 여기에 대한 조사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사람이 밟은 것으로 기록됐다고 결론나게 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급발진 재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ECU를 공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미국에서는 북아웃 소송에서 판사의 명령으로 소프트웨어를 조사한 적은 있다. 토요타 캠리에서 급발진이 발생하니까 원고 측 전문가가 토요타 소프트웨어 코드 룸에 들어가 소프트웨어를 뜯어봤더니 엄청난 버그들이 발견됐고, 이로 인해 급발진이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했다.
Q. 강릉 급발진 소송에 ECU 전문가 증인 채택 됐는데
A. 소프트웨어 설계도가 수만장이고, 코디량도 수백만줄을 넘어서기 때문에 ECU 소프트웨어에 결함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정도의 증언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소프트웨어를 하나하나 뜯어볼 수 없으니 직접증거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간점증거를 제시할 수는 있다. 자동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사실을 증언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ECU전문가가 처음으로 법정에 선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다.
Q. 제조사가 급발진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A. 이런 것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안전문화라는 게 있다. 급발진으로 인한 이슈가 계속해서 제기될 때 자동차회사가 그것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냐의 문제인데 국내 제조사들은 이런 문화가 결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Q. 제조사 정보 공개하면 유의미한 효과 있을까
A. 제조사가 정보를 공개해도 우리가 분석할 능력이 없다. 미국에서는 로펌들이 공격적으로 재판에 임할 수가 있는데 전문가에게 미리 돈을 지불할 수 있도록 은행에서 미리 돈을 빌려준다.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정착 돼있지 않고, 아직 걸음마 단계다. 우리나라에서는 급발진 소송에서 이겨봤자 피해액 고작 몇억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비를 들여서 금액을 선지출해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고용해 분석할 수 있는 피해자는 부유층에 한정될 것이다. 정보 공개 명령이 활성화돼도 돈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을 개정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Q. 그렇다면 현실적인 방안은
A. '복잡성'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하다.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에 부가 조항으로 자동차와 같은 고난도의 기술적 상품에 대해서는 입증 책임을 완화하기로 한다는 구체적인 사항을 명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자동차 페달 블랙박스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당장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조사에서 페달블랙박스를 다는데 돈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 그 돈보다 급발진으로 사람이 죽어가고 쓸데없는 소송들이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전자장치 다중화를 통해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다중화는 결함이나 고장에 대비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두 개 이상의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중화 기술은 어렵지 않지만 돈이 많이 든다. 비행기에서는 한 번 사고가 나면 수백 명이 죽기 때문에 다중화를 한다. 이러한 심각성을 얼마만큼 반영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자동차는 그냥 두겠다는 것이다.
Q. 자율주행차 상용화 된 이후에도 급발진 사고 이어질까
A.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급발진이 없어질 것이다. 지금은 급발진이 생기면 운전자가 잘못 밟았다는 말이 통하지만 자율주행 시대에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사람이 운전을 했는지, 기계가 운전을 했는지가 법적인 책임소재를 가르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DSSAD(자율주행정보기록장치)가 탑재될 예정인데, EDR과는 비교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양의 데이터가 기록될 것이다. 자율주행을 키고 갔는데 급발진이 발생하면 100% 제조물 책임이기 때문에 제조사들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
Q. 급발진 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 방안은
A. 브레이크를 힘차게 밟고, 그 다음에 기어를 중립으로 바꿔야 한다. 이를 시도했는데도 안되면 앞차를 들이받는 방법밖에는 지금으로써는 없다.
김근화 기자 srmsgh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