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02일 (로이터) -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예산안을 발표하며 유럽연합(EU)에 반기를 들었던 이탈리아가 일단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U와 금융시장이 이탈리아의 예산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데 따른 반응이다. 이탈리아는 예산안 추가 논의 계획을 알렸다.
지난주 이탈리아 정부는 내년부터 3년간 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4%로 확대하는 내용의 새 예산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경제 및 재정목표를 담은 자료는 공표하지 않고 있다.
1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유로그룹 회의(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한 피에르 모스코비치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이탈리아의 예산안이 '명백히' EU 규정과 과거 협의사항에서 벗어났으며, EU 집행위원회는 "(규정 위반 수준이) 얼마나 큰지,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지" 가늠할 것이라고 말했다.
EU 규정에 따르면, 집행위원회는 오는 15일 유로존 국가들의 예산안 초안을 전달받은 뒤 10일 안에 이를 거부할 수 있다. EU의 안정·성장 협약을 위반했을 경우에 한해서다.
이를 두고 이탈리아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오성운동의 대표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는 EU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탈리아 예산안 관련 부정적인 발언을 유포해 의도적으로 금융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모스코비치 위원을 겨냥해 "의도적으로 시장을 교란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디 마이오 부총리는 며칠 안에 주세페 콘테 총리,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지오반니 트리아 재무장관과 함께 예산안 관련 추가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GDP 대비 2.4% 재정적자 계획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트리아 장관은 에코핀(유럽재무장관회의) 참석을 취소하고 이날 급거 귀국할 예정이라고 재무부 관계자가 밝혔다. 앞서 트리아 장관은 유로그룹 회의에 참석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EU의 한 소식통은 트리아 장관이 유로그룹 회의에서 유로존 국가들에게 '내년 예산안의 세부내용은 여전히 논의 중'이라 말했다고 전했다.
당초 이탈리아의 예산안은 유로그룹 회의의 안건에 오르지 않은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 소식통은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재무장관이 트리아 장관에게 예산안 설명을 요청했고, 트리아 장관은 이번 예산안이 최종안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알렸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유로그룹 회의를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이탈리아 예산안 관련 질문을 받자 "모든 국가들은 최선을 다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단계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U 집행위원회의 예산안 심사가 끝난 뒤 유로존 국가들은 유로그룹 회의 결과에 따른 "정치적 틀"의 범위 내에서 이탈리아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당초 EU는 이탈리아와 대립각을 세우진 않는 기조를 취할 것으로 관측됐다. 지난 28일 모스코비치 위원은 "EU와 이탈리아간 관계에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EU의 권고와 제재가 이탈리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신중한 발언이다.
이날까지도 EU 내 신중론은 잔존했다. 마리오 센테노 유로그룹 의장은 이탈리아가 자신들의 내년 예산안 협상을 끝낼 때까지 유로존 국가들은 이탈리아 예산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산안 진행과정이 길다는 사실을 이해하는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탈리아 내에서 여전히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협상이 진행되도록 기다리고, 협의 과정이 끝날 때쯤 답을 찾아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집 박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