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5월 30일 오전 6시11분
정부가 전선의 설계 및 제조 관련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려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기술 유출을 막는다는 명분이지만 인수합병(M&A)과 수출을 가로막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전선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조만간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열고 500㎸급 이상 전력케이블 시스템(접속재 포함)의 설계 및 제조와 관련한 12개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추가 지정하는 안건을 심의·의결할 계획이다. 산업기술보호위가 의결하면 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고시한다.
업계에선 핵심기술 지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500㎸급 교류(AC) 전력케이블은 중국 13개사를 포함해 세계 27개사가 생산 중인 범용 기술이다. 성장 잠재력도 높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류(DC) 전력케이블은 해외 경쟁사에서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고급형(XPLE) 타입까지 상용화에 성공했다. 중국 ZTT도 2017년 7월 525㎸급 XPLE 케이블 개발에 성공했다. 반면 대한전선과 LS전선 등 국내 업체는 이 같은 고급형 상품을 개발 중이다.
이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한 대학 교수는 “국내 전선회사가 생산하는 전선의 재료는 모두 독일에서 수입하고, 한국전력은 세계 업체를 상대로 납품업체를 고르고 있다”며 “전선기술 유출이 국가 산업과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기술 유출을 막자는 제도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 국가핵심기술 지정 남발이 업계 자율성을 침해하는 결과만 일으킬 것이란 우려도 있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관련 제품을 수출하거나 기업을 매각할 때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승인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공작기계회사인 두산공작기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가 보유한 ‘다축 터닝센터’와 ‘고정밀 5축 머시닝센터’ 기술은 일본, 중국 경쟁사보다 우위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M&A 때마다 기술유출 논란을 일으켰다.
2016년 두산그룹이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에 두산공작기계를 매각할 때는 물론 올 들어 MBK가 투자금 회수를 위해 재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일부 이해 관계자가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근거로 ‘해외 매각 불가’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관련 기술을 적용하는 사업 매출이 전체의 5%에 못 미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과도하게 발목을 잡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변경 승인 문제로 인해 최근 롯데카드 우선협상대상자가 뒤바뀐 것처럼 산업부의 국가핵심기술이 M&A 시장을 왜곡하는 또 다른 규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500㎸ 이상 직류 전력케이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는 데 절차상 문제는 없다”며 “전문위원회를 한 차례 더 열어 산업기술보호위원회에 안건을 올릴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가 지정하는 국가핵심기술은 2007년 반도체 철강 조선 등 7개 분야, 40개 기술로 시작해 12개 부문, 64개로 늘어났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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