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자산운용사들은 업계 새 먹거리로 '외부위탁운용관리'(OCIO)를 '상장지수펀드'(ETF)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깁니다. OCIO라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많을 텐데요. 증시에 상장돼 개인 투자자들이 직접 사고 팔 수 있는 ETF와 달리 OCIO는 주로 기관이나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을 펴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고액자산가 등 개인을 타깃으로 한 OCIO 시장도 있지만 아직은 미개척지에 가깝습니다.
OCIO 제도란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역할을 아웃소싱한다는 의미입니다. 연기금과 국가기관, 법인 등이 여유자금을 외부 투자전문가인 증권사나 운용사에 일임해 운용하는 체계인 것입니다. 전략적 의사결정 권한의 상당부분이 수탁자인 운용기관에 위임되는 만큼 내부 전문 운용인력이 부족한 위탁자로서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올 4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인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가 도입되면서 OCIO 시장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향후 퇴직연금 분야에서 OCIO의 기회가 획기적으로 늘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죠.
이런 가운데 OCIO 사업자가 시장상황 변화와 잠재적 고객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외부 위탁운용 체제는 어떤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좋은지를 다룬 논문이 다시금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2020년 2월 한국파생상품학회에 실린 논문 'OCIO 사업발전을 위한 핵심요인에 관한 연구: OCIO 서비스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입니다. 제1저자인 신중철 에프앤가이드 고문(KG제로인 전 사장)을 비롯해 박래수 숙명여대 교수와 정재만 숭실대 교수가 연구진으로 참여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OCIO 형태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기획재정부에서 주관하는 '연기금 투자풀'입니다. 연기금투자풀은 자산운용에 전문성이 부족한 중소형 공적기금들에 서비스를 제공했단 점에서 OCIO의 형태라고 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성격의 여러 기금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3년 산재보험기금과 고용보험기금이 각각 한 곳의 운용기관을 둔 OCIO를 채택했고 이를 계기로 포괄적인 일임운용 체제가 본격화했습니다. 이듬해 주택도시기금이 기존 복수의 랩운용사 체제에서 2곳 주간사 체제로 바꿨고 방사능폐기물관리기금도 2018년 OCIO 형태의 운용체계를 도입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국내외 현황 비교·분석에 집중했는데요. 우리나라와 해외의 OCIO가 '업태'와 '중점 목표' 등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고 봤습니다.
첫째로 업태가 다릅니다. 국내 OCIO 사업자는 크게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로 나뉩니다. 대부분의 대형 OCIO가 컨설턴트나 자산운용사 기반인 미국의 경우와 상반되는데요. 아직 우리나라엔 OCIO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도 없고 컨설팅에서 출발한 OCIO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외국과 달리 OCIO 사업에 힘을 주는 증권사가 많은 점도 독특한 대목입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증권사가 기존 고객들과 OCIO 고객 간 접점이 있는 데다 자본과 인력 측면에서 운용사 대비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라고 짚었습니다. 당장 서비스 수준이 낮더라도 잠재적으로는 그 수준을 올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중점 목표가 다릅니다. 연구진이 2018년 말 OCIO 사업을 하는 기업 23곳(증권사 21곳·운용사 2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들 기업은 기금 등의 자산소유자들이 OCIO를 택하는 가장 큰 이유가 '수익률 제고'라고 답했습니다. 15곳이 OCIO 사업에서 수익률 제고가 '아주 중요하다'고 답변했고 8곳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산소유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선 리스크관리와 내부자원 부족 해결이 우선사항이었습니다. 미국 CIO 전문 디지털 잡지인 'CIO 매거진'의 2016~2017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외 자산소유자들은 투자성과 자체보단 전반적인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OCIO의 역사가 짧은 국내에서는 당장의 직접적인 목표인 운용성과를 중시하는 데다 국내 공적기금을 매년 평가하는 기금평가에서도 성과평가의 비중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OCIO의 역사가 긴 외국에서는 성과가 시기에 따라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인지하게 됐고 수탁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적 요구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은 해외 선례를 토대로 우리 실정에 맞는 OCIO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먼저 자산소유자나 OCIO 서비스 사업자가 수익률 제고를 중점 목표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입니다. 수익률 제고를 직접적인 목표로 설정하게 되면 단기적인 성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는 겁니다. 리스크 관리와 적절한 자산배분 등의 전략적인 서비스와 수탁자로서의 감시역할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장기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논문은 전했습니다.
증권사와 운용사들이 개별적인 역량 강화 활동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해외투자와 대체자로 투자영역을 넓히고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서비스 질을 높이는 등 인력과 기술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입니다. 덧붙여 논문은 자산소유자로서도 아웃소싱과 별도로 기금 내부에 운용전략 수립 등을 맡을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내부에 독자적으로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컨설팅 업체를 따로 둬서 기금관리 주체나 기금운용위원회에 자문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책적인 개선안도 나왔습니다. 논문은 OCIO 대상 기금들의 동질성이 확보돼야 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국내 OCIO 사업의 양축을 지지하고 있는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들 대부분은 종합서비스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OCIO와 같이 투자자에게 포괄적인 서비스를 다양한 성격의 기금 모두에게 맞추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여러 기금들에게 한꺼번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연기금투자풀'의 한계도 여기에 있습니다.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위해 풀 구조가 필요할 경우, 풀에 참여하는 대상기관의 동질성을 높여 같은 유형의 서비스로 만족할 수 있는 구조를 고려해야 한다는 게 연구진의 주장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업종별 협회 중심의 OCIO 구축'을 제시했습니다. 철강 업종이면 철강협회, 게임 업종이면 게임산업협회가 OCIO 전반의 업무를 위임 받아 회원사들의 자금 운용과 관리를 도와주자는 겁니다.
논문의 제1저자인 신중철 고문은 기자와 통화에서 "대부분의 OCIO 연구가 수익률에 집중됐고 비용에 대한 논의는 덜 돼 있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수많은 기업들이 비용 문제로 OCIO 도입을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협회 차원에서 내부에 기금을 다룰 수 있는 전문 조직을 두고 산하 기업들의 의사결정을 대리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동저자인 정재만 숭실대 교수도 "기금형 퇴직연금을 대상으로 OCIO를 고려할 경우 업종별 협회를 중심으로 OCIO를 선정해 해당 업종의 기금형 퇴직연금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획재정부가 관장하는 현 연기금투자풀은 중앙정부에서 관할하는 모든 기금을 대상으로 하는 복수의 연기금투자풀 주간운용사를 두고 있는데, 기금의 특성에 따라 차별화된 주간운용사로 바꾸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OCIO 전문 운용사의 출현 필요성도 언급됐습니다. 국내에는 아직 OCIO에 특화한 운용사가 없는데요. 기금형 퇴직연금이 보편화할 경우 규모나 서비스 영역이 다양한 퇴직연금 기금들이 나타날 것인 만큼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OCIO 서비스 사업자가 필요하단 이야기입니다. 신 고문은 "이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컨설팅에 기반을 두거나 OCIO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업자가 출현할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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