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선물(4월물) 가격이 트로이온스당 1689.70달러 선에서 거래돼 11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5일 서울 종로 한국금거래소에 골드바가 전시돼 있다.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미 국채 금리의 추가 상승을 용인하는 발언을 해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국제 유가까지 급등해 주요국 증시는 더 흔들렸다.
파월 의장은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최한 화상 콘퍼런스에서 “최대 고용과 함께 평균 2.0%라는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며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도 인내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물가 상승률이 1.4% 수준이어서 그의 말은 국채 금리의 추가 상승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파월 의장은 최근 급등한 미 국채 장기물 수익률에 대해 “주목할 만하지만 우리는 금융시장 전반을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회사 바이털날리지의 애덤 크리사풀리 창업자는 “시장 안정성 힌트를 전혀 주지 않은 건 관련 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려는 쪽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 직후 채권 금리는 급등했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장중 연 1.555%까지 뛰었다가 1.54%로 마감했다. 전날(1.47%) 대비 0.07%포인트나 오른 수치다. 초저금리 혜택을 많이 받아온 나스닥지수는 하루 동안 2.11% 하락하면서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5일 코스피지수는 한때 3000선을 내줬다가 0.57% 내린 3026.26으로 마감했다.
이날 미 국채의 대체재 격인 금 가격(4월물)은 트로이온스당 1689.70달러로, 작년 3월 이후 처음 17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같은 안전 자산인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면서 금의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국제 유가는 크게 올랐다.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 회원국들이 예상을 깨고 다음달에도 종전과 비슷한 감산 체제를 유지하기로 해서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4월물은 전날 4.2% 폭등한데 이어 이날도 1.2% 오른 배럴당 64.38달러로 장을 마쳤다. 1년11개월 만의 최고치다. 유가 상승은 물가를 더 자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너무 빨리 뛰는 美 국채 금리…월가 "Fed, 시장개입 나설 수도"
美 10년물 금리 한달 새 0.5%P 급등…당분간 더 오를 듯
미국 경제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채권 금리도 덩달아 뛰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백신 보급 속도가 빨라지고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미 의회를 통과하면 금리 상승 속도가 더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월가에선 미 국채 금리가 단기간 추가 급등하면 결국 미국 중앙은행(Fed)이 시장 개입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달 만에 1.5배 된 美 국채 금리‘코로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선언 이틀 전인 작년 3월 9일 연 0.54%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던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4일(현지시간) 연 1.54%로 마감했다. 1년 만에 정확히 1.0%포인트 뛴 것이다.
국채 금리 상승은 ‘백신 배포→경기 회복→물가 상승’에 따른 ‘예고된 이벤트’다. 그런데도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 건 예상을 뛰어넘은 상승 속도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후 줄곧 연 1%를 밑돌던 국채 금리가 급등세를 타기 시작한 건 올해 1월 말부터다. 같은달 27일 연 1.04%였던 10년 만기 수익률은 한 달여 만에 0.5%포인트 상승했다. 지난달 25일엔 장중 연 1.614%를 찍으며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국채 금리는 당분간 더 뛸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대규모 부양책의 시행이 가시화하고 있어서다. 이달 중순부터 1조9000억달러가 풀리면 경기 회복이 가속화하고,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 또 미 재무부가 막대한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기 때문에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시장 금리의 상승은 미국의 기업·가계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일반 대출 금리와 연동하는 구조 때문이다. 주택금융 업체인 프레디맥에 따르면 이날 30년 만기 고정금리형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평균 3.02%를 기록했다. 모기지 금리가 연 3%를 넘어선 것은 작년 7월 후 약 8개월 만이다.
미 국채 금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브리핑이 예정된 오는 17일까지 불안한 움직임을 지속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FOMC가 열리기 전 약 2주일 동안 Fed 핵심 인사들이 통화정책 발언을 내놓지 않는 ‘블랙아웃’ 관행이 있어서다.
다만 국채 금리의 급등락이 계속되면 제롬 파월 Fed 의장이 FOMC 직후 시장 개입을 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 언론들이 전했다. 개입 방식으로는 수익률 곡선 통제(YCC)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T), 은행권 보완 레버리지 비율(SLR) 규제 완화 연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국고채 금리는 2년 만에 연 2% 돌파미 국채 금리 상승으로 한국 채권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5일 오전 연 2.010%까지 치솟았다. 오후 들어 조정을 받으며 연 1.992%로 마감했지만 언제라도 다시 2%를 웃돌 수 있다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2%를 넘어선 것은 2019년 3월 7일(연 2.005%) 후 2년 만이다.
10년물뿐 아니라 다른 만기의 국고채 금리도 급등했다. 초장기채인 20년물(연 2.115%)과 30년물(연 2.120%)은 0.02%포인트 이상 올랐다. 단기물인 3년물(연 1.066%)과 5년물(연 1.438%)은 각각 0.036%포인트, 0.016%포인트 상승했다.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확장 재정으로 국고채 발행량도 급증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국고채는 60조7275억원 규모다. 올해 45조4060억원보다 33.7% 늘어났다. 만기가 돌아오는 국고채 규모는 2023년 더 증가해 68조9614억원에 이른다. 만기가 도래하는 국고채 대부분은 새로 채권을 발행해 상환하는 차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금리가 오르면 채권 발행 금리도 높아져 한국 정부 부담은 확 늘어난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꺼번에 대규모 물량을 상환해야 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조기상환 등 만기도래 물량 분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김진성/노경목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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