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민·KEB하나·우리·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은 전국 3180개 점포에 대여금고실을 운영하고 있다. KEB하나은행 직원이 10일 서울 을지로에 있는 본점 대여금고실 이용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엔 1638개의 대여금고가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은행에 돈만 맡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려받은 금가락지와 자녀의 돌반지는 기본이고, 대대손손 내려오는 족보까지 은행에 맡겨둘 수 있다. 주요 은행 영업점 안쪽에는 ‘비밀의 문’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대여금고실이 있다. 신한·국민·KEB하나·우리·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에서 대여금고실을 운영하는 점포 수는 전국 3180곳에 달한다. “집안에 놔두기 불안한 귀중품이 있다면 은행 대여금고를 활용해볼 만하다”고 은행 직원들은 귀띔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잘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곳, 은행 대여금고를 찾아가봤다.
대여금고 들어가보니…
10일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2층의 대여금고실. 은행 직원의 안내를 받아 문을 열고 들어서자 두툼한 철문이 또 하나 등장했다. 이 철문은 손잡이를 당겨도 열리지 않는다. 철문 옆에 마련된 ‘금고 이용고객 인증’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금고번호를 입력하고, 해당 번호에 등록해둔 지문이나 비밀번호를 넣는 시스템이다.
“인증됐습니다”는 안내음이 들리고 철문이 열렸다. 이곳엔 600여 개의 대여금고가 도서관 책장처럼 줄지어 있었다. A4용지 한 묶음 정도 크기의 작은 금고부터 24인치 TV 한 대가 거뜬히 들어가는 대형 금고까지 크기가 다양했다.
금고를 여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가장 흔한 방식은 열쇠로 여는 것. 열쇠는 금고 하나당 두 개씩 제공된다. 하나는 이용자가 보관하고, 다른 하나는 인감 날인 후 봉인해 은행이 보관한다.
한 단계 진화한 대여금고도 있다. 표면에 금고번호는 물론 열쇠 구멍까지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새까만 금고. 여기에 휴대용 손전등으로 불빛을 비추면 금고번호가 보인다. 자신의 금고에 지문을 갖다대면 ‘스르륵’ 문이 열리는 방식이다.
대여금고에 넣을 수 있는 물품에는 큰 제약이 없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대여금고에는 직원이 동행하지 않고 고객 혼자 들어가기 때문에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은행도 모른다”며 “계약서나 권리서류 등 중요 증서를 보관하거나 그림이나 골동품 등 각종 수집품을 넣어두기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여금고실엔 한 번에 한 명만 입장할 수 있다. 이용 중인 손님이 있다면 기다렸다가, 앞사람이 나온 뒤 들어가야 한다.
보증금만 내면 누구나 이용 가능
통상 은행 대여금고는 1년 단위로 신규 계약을 맺는다. 이용 조건과 이용자 선정 방식, 이용료 등은 은행마다 조금씩 다르다. 국내에서 대여금고를 운영하는 점포 수가 가장 많은 곳은 국민은행(844곳)이다. 국민은행은 ‘골드스타’ 등급 이상 중 거래실적이 우수한 고객을 우대해 대여금고를 빌려준다. 금고 크기에 따라 1년에 보증금 20만~50만원, 수수료 2만~5만원을 각각 내면 된다. 보증금은 대여기간이 끝나면 돌려준다.
규격이 가장 다양한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전국 799곳의 점포에서 대여금고실을 운영 중이다. 높이 60~80㎜에 폭 120~160㎜짜리 가장 작은 대여금고는 연간 보증금 5만원, 수수료 1만원이다. 높이 201~300㎜에 폭 260~300㎜짜리 대형 금고는 연간 보증금 30만원, 수수료 3만5000원이다. 카드와 비밀번호, 열쇠 세 가지를 함께 사용하는 전자식 대여금고도 있다. 이 금고는 연간 보증금 70만원에 수수료 7만원을 내야 한다.
수수료 없이 보증금만 내면 대여금고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은행도 많다.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 등은 각 금고 크기에 따른 연간 보증금만 내면 별도 수수료 없이 금고를 빌려준다.
편의성·안전성이 가장 큰 장점
명절 때 대여금고를 무료로 개방하는 은행들도 있다. 올해 추석에는 농협은행과 부산은행이 9일부터 대여금고를 무료로 개방했다. 농협은행은 오는 18일까지, 부산은행은 20일까지 고객 누구나 보증금, 수수료를 내지 않고 대여금고를 이용할 수 있다. 신분증(주민등록증 또는 운전면허증)을 지참해 대여금고를 보유한 영업점을 방문하면 이용 가능하다.
대여금고의 장점은 편의성과 안전성이다. “대여금고를 한 번 이용해보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일각에선 ‘불법자금 저장수단’이란 의혹의 눈초리도 보낸다. 2007년 신정아 씨의 은행 대여금고에 재벌 회장 부인의 비자금이 보관됐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같은 의혹이 커지기도 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여금고는 고객 정보와 은행 거래 실적이 있어야만 개설할 수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검은 돈’과는 거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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