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에서 본 목포 앞바다.
여기 목포말 번역기가 있다고 치자. “어이~나 삽 하나 챙겨서 언능 은행 댕겨올게.” 이 말은 곧 이렇게 해석된다. “지금 갯벌 가서 낙지 좀 캐올게.” 세발낙지 한 접(20마리)으로 순식간에 20만~30만원은 손에 거뜬히 쥘 수 있는 곳. 항구도시 목포는 먹거리 천국이면서 유난히 슬픈 이야기가 많은 도시다. 개항기 일제 수탈의 핵심 거점이었고,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했다.
목포의 구도심엔 지금 20대 여행자가 몰리고 있다. 서울에서 KTX나 SRT를 타면 2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목포역. 주말에는 빈 좌석을 구하기 어렵다. 인근 만호동과 유달동 등 근대역사문화공간 적산가옥(敵産家屋)에는 젊은 연인과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이 사진 찍기에 바쁘다. 아침 일찍 출발해 지도 한 장이면 하루 만에 노적봉 유달산 목포진은 물론 개항기 거리까지 돌아볼 수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식당과 빵집에는 매일 긴 줄이 늘어선다. 목포 여행의 꽃은 음식이다. 목포시는 세발낙지, 홍어삼합, 민어회, 꽃게무침, 갈치조림, 병어회, 준치무침, 아귀탕과 우럭간국 등 목포 사람들이 오래도록 즐겨 먹던 음식을 9미(味)로 지정했다. 동네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1년 내내 맛깔스러운 밥상과 함께할 수 있다. 목포 근대문화역사관 전경.
하루에 돌아보는 유달산~개항기 거리
목포는 최초의 자발적 근대항이다. 1897년 고종이 열었다. 부산항, 인천항, 원산항 등이 먼저 개항했지만 이들 항구는 모두 강화도 조약에 의해 강제로 열렸고, 목포항만 유일하게 고종의 칙령으로 개항했다. 당시 목포에 일본 영사관이 있었고,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도 있었다. 목포와 신의주를 연결하는 국도 1호선과 부산으로 가는 2호선도 이곳이 기점이었다. 일본인들은 여기서 ‘1흑(黑)3백(白)’을 자국으로 실어 날랐다. 1흑은 김, 3백은 쌀과 소금과 목화다.
유달산 밑 볕이 잘 들고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평지에는 일본인 구역이 있었다. 조선인 구역은 산 언덕 뒤편과 바다 앞 등으로 밀려났다. 목포역에서 10분 거리인 목포오거리가 여행의 시작점이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구역이 나뉜다. 만호동과 유달동 일대 남촌은 적산가옥과 일본풍 건축물이 밀집해 있다. 지금도 잘 정돈된 일본식 정원과 가옥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 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등 식민지 시절 관공서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근대문화역사관으로 쓰인다. 최초의 근대식 건물인 옛 일본 영사관은 유달산이 주변을 감싸고 있고, 아래로는 일본인 주거지와 항구가 한눈에 보인다. 건물 뒤편엔 82m 길이의 방공호도 그대로 남아 있다.
영화 ‘1987’의 무대가 된 목포 시화골목.
어촌마을 서산동 시화골목
목포 어촌의 상징인 온금동과 서산동은 당시 삶과 애환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서산동 시화골목은 요즘 목포 여행자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영화 ‘1987’에서 ‘연희네 슈퍼’로 등장한 슈퍼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시화골목은 목포 어촌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곳이다. 시인과 화가, 주민들이 뜻을 모아 2015년부터 3년간 조성했다. 연희네 슈퍼를 시작으로 세 갈래 길이 나오는데 어느 골목으로 올라가도 ‘보리마당’과 만난다. 이 길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직접 쓰고 그린 시와 그림이 붙어 있다. 걷다 보면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곳. ‘철없이 뛰어 놀았는데 벌써 막둥이 할매가 되어 경로당 신세(이난금)’ 등 삐뚤빼뚤한 할머니들의 시를 볼 수 있다. 이 동네 할머니들이 특별한 것은 ‘조금새끼’ 설화 때문이다. 어부와 어부 가족들이 모여 살던 이 마을은 옛날부터 어부들이 한 배를 타고 고기잡이에 나가고, 바다 조금 때가 되면 다 함께 들어왔다. 조금은 썰물일 때,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집집마다 아기를 갖는 때이기도 했다. 열 달 뒤 여러 집에서 동시에 아기 울음소리가 나고 이때 태어난 아이들을 ‘조금새끼’라 했다. 이들이 자라 또 선원이 되면 사고로 바다에 묻히는 날도 같아 이 달동네는 옛날부터 생일도 함께, 제사도 함께 지냈다고. 이 할머니들은 바다와 유달산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보리마당에 모여 신세 한탄과 위로를 함께 나눴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따라지 마을’도 있다. 전쟁 때 피란민에 이끌려 따라왔다고 하는 ‘따라지’. 지금도 후손들이 몇 가구 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홍어삼합, 낙지탕탕이, 갈치구이
곳곳마다 맛집이 즐비
자타공인 맛의 도시인 목포에는 맛집도 즐비하다. 목포 맛집은 여객터미널 주변과 신중앙시장, 자유시장 주변에 몰려 있다. 온금동 선경준치회집은 먹갈치구이와 준치회무침 등을 잘하는 곳이다. 목포시가 정한 음식 명인의 집 ‘모정명가’는 한정식을 주로 내는데 매생이 요리를 잘한다. 매생이 초무침과 매생이전, 매생이 떡국 등이 유명하고, 홍어 요리도 수준급이다. ‘인동주마을’은 직접 담근 탁주와 ‘웃주(맑은 술)’에 홍어삼합 코스를 맛깔나게 즐길 수 있어 유명해진 집이다.
젊은이들에겐 카페와 중국음식점, 디저트 가게 등이 더 인기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온 특별한 중국음식 ‘중깐’이 대표주자다. 중깐은 고기가 듬뿍 들어간 유니짜장면을 목포에서 부르는 말이다. 중화루와 태동반점이 유명하다. 계란 프라이가 얹어져 있고, 고기와 양파가 잘 볶아져 나오는데 두 집 모두 종일 사람들로 붐빈다. 디저트를 찾는 사람들에겐 ‘코롬방제과’의 새우바게트와 크림치즈바게트를 추천한다. 다만 20~30분씩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쑥굴레집도 오래된 맛집이다. 학생들의 분식집이었는데 쑥반죽에 고명을 얹어 조청을 찍어 굴려 먹는 ‘쑥꿀레’로 유명하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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