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블랙스톤이 서울사무소를 꾸려 한국 시장 재진출을 예고하면서 글로벌 PEF 한국사무소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PEF 중 일부는 서울 등에 사무소를 두고 국내 투자자와 교류하고 투자 대상을 검토한다.
국내에서 단행한 거래가 ‘대박'을 거두면서 담당 임원이 글로벌 PEF의 주요 임원인 매니징디렉터(MD) 지위에 오른 사례도 하나둘 쌓이는 중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론 한국사무소의 역할이 거래당사자가 아닌, 어디까지나 지원업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세금 문제가 있다. 한국이 중요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한국사무소의 실제 역할이 너무 크다고 강조했다가는 국세청에서 대규모 세금을 추징당할 수 있어서다. 한 글로벌 PEF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PEF 내부에선 각국 내 사무소를 ‘컨설팅 브랜치’로 통칭한다”며 “우리는 독립된 사업자도 아닐 뿐더러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기구일 뿐이라는 논리”라고 말했다.
대부분 글로벌 PEF 운용사(GP)는 해외 혹은 조세피난처 등에 등록해 펀드를 조성할 뿐더러, 투자도 해외에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를 활용한다. 각국은 조세협정을 맺어 이중으로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 돈을 벌었더라도 미국, 홍콩, 케이맨제도 등 각국에 세금을 정당하게 납부했다면 한국 정부에 따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를 위해선 국내에 설립된 고정 사업장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아니라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고정 사업장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2017년 론스타의 대법원 판결이 흔히 회자된다. 국세청은 2008년 론스타가 국내 고정 사업장(론스타어드바이저스코리아)에서 도움을 받아 외환은행 투자 등을 단행해 막대한 수익을 얻은 만큼 여기에서 파생된 배당소득·양도소득 등을 국내 원천소득으로 간주해 국내 세율로 과세했다.
하지만 2017년 대법원은 “론스타 국내 사무소의 역할은 투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사전적·예비적 활동 또는 자산을 관리하며 그 처분 시점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사후적·보조적 활동이었다”며 해당 사무소가 고정 사업장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론스타의 수익 창출 과정 중 자금 모집 및 투자, 투자 회수에 관한 주요한 결정이 모두 해외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예를 들어 KKR의 KCFT(현 SK넥실리스) 매각 거래의 경우 법적으론 캐나다에 등록한 KKR 아시아 3호 펀드가 미국 델라웨어주에 설립한 SPC(Pantheras Holdings LLC)를 통해 투자한 거래다. 델라웨어주는 양도소득에 대해 별도 과세를 하지 않으므로 해당 SPC를 통하면 한국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수천억원 세금을 아낄 수 있다. KKR이 SKC와 맺은 매매계약서를 보면 거래를 이끌어 온 박정호 KKR 한국사무소(KKR Korea LLC) 대표가 아닌 매각 당사자인 SPC ‘판테라 홀딩스’의 임원들이 서명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조(兆) 단위 거래를 성사시켜도 글로벌 PEF 서울사무소가 얻는 수익은 월급과 보너스 등 소규모 수수료 수입이 전부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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