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태블릿PC가 필요할까 싶었다. 데스크톱PC도 있고 노트북도 있어서다. 집에서 큰 화면이 필요하면 데스크톱PC를 쓰고 회사에선 노트북으로 일하니까 태블릿PC는 별무소용일 것이라고 여겼다.
40대 A씨 얘기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태블릿PC를 산 뒤 이런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태블릿PC는 ‘새로운 물건’이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만져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고 전용펜슬을 이용하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다른 섬세한 작업도 가능했다. A씨는 “태블릿PC의 기능이 워낙 다양해 아직 그 기능의 10% 정도만 이용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왜 태블릿PC를 사는지는 절감했다”고 말한다.
정보기술(IT) 기기를 금융투자상품과 연결시켜 보자. 금융투자상품에서 비트코인은 IT 기기의 태블릿PC와 닮았다.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이 익숙하게 활용했다는 점에서 펀드는 데스크톱PC, 주식은 노트북에 비견할 만하다.
등장 순서로만 따지자면 주식이 데스크톱PC, 펀드가 노트북에 해당한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거세진 ‘주식 직접 투자’ 열풍을 감안하면 주식을 노트북으로 보는 게 맞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왜 태블릿PC인가. 데스크톱PC와 노트북이 IT 기기의 대세인 것처럼 펀드와 주식이 금융투자상품의 대표다. 비트코인은 아직 낯설어 하는 사람이 많다.
2017년에 이어 비트코인 광풍이 다시 불면서 비트코인의 존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지만 실제로 비트코인에 투자한 사람은 주식 및 펀드 투자자에 비해선 조족지혈이다.
태블릿PC 사용자가 4050에 비해 2030이 많다는 점은 비트코인에서도 비슷하다. 비트코인 투자자의 다수는 2030이다.
그래서 A씨가 ‘태블릿PC가 필요할까’라고 의문을 품었듯이, 비트코인에 대해 ‘굳이 저런 것에까지 투자해야 할까’라는 4050이 많다. 새로운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이런 거리두기는 비트코인의 엄청난 변동성을 알게 되면 더 강해진다.
주식도 바이오 같은 일부 종목은 주가가 하루에도 수십% 급등락하며 커다란 변동성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변동성은 비트코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비트코인에 투자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쉽게 공감할 것이다.
게다가 1년 365일, 24시간 내내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만 장이 열리는 주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이유들로 비트코인에 경계심을 보이던 투자자들이 하나둘 ‘호기심’을 나타내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NASDAQ:TSLA) 최고경영자(CEO)가 불을 붙였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람’이란 이미지의 머스크는 “비트코인으로 자동차를 살 수 있게 하겠다”며 “비트코인은 화폐와 거의 다름없다”고 했다. 며칠 뒤엔 “비트코인 가격이 높은 것 같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비트코인 열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주식시장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금’으로 통하는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란 인식도 투자자들에겐 매력적이다. 테슬라가 보유 현금의 약 8%(15억달러)를 비트코인으로 보유한 것처럼 금융투자금액의 10% 정도는 비트코인에 넣어야 할까를 두고 고민하는 투자자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선뜻 실행에 옮기기는 마뜩잖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비트코인은 투기적인 자산”이라고 경고하면서 미국 정부 차원의 ‘규제’가 비트코인 투자의 최대 리스크 요인이 된 상황이어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비트코인은 얼리어답터의 것일 뿐 나(주식투자자)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고 결론짓고 싶어진다. 하지만 “혹시 내가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비트코인이 태블릿PC가 아니라 ‘스마트폰’이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스마트폰은 IT 기기 중에서 사용자가 가장 많고, 사용 시간도 가장 길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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