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골드스미스 인근 유정의 원유시추기 펌프잭 뒤로 해가 지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이코노믹리뷰=도다솔 기자] 국제유가가 최근 3년 만에 최고치인 780달러에 바짝 근접하며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갈등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간 협의체인 OPEC플러스(OPEC+) 회의가 최종 결렬되며 증산 합의가 무산되자 유가가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대비 1.57% 상승한 배럴당 76.34달러에 거래됐다. WTI 가격이 배럴당 75달러를 넘어선 것은 2018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북해산 브렌트유도 전날보다 1.27% 오른 배럴당 77.1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앞서 OPEC+는 지난해 5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수요 급감과 저장시설 포화 문제 등으로 하루 970만 배럴 감산을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백신 접종과 경기 회복이 시작되며 2022년 4월까지 점진적으로 감산 규모를 완화하기로 합의했다.
조금씩 감산 물량을 줄이던 산유국들의 행보에 시장에 더 많은 석유가 공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이유다.
그러나 3위 산유국인 UAE가 이번 OPEC+ 회원국들이 합의한 증산안 연장결정에 반발하면서 당초 2일로 예정된 회의가 취소, 국제유가는 다시 상승랠리를 타고 있다.
수하일 알마즈루에이 UAE 에너지 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UAE는 단기적인 증산은 지지할 의향이 있지만 내년 말까지 연장하는 방안에는 더 좋은 조건을 원한다”며 “감산 완화 합의 시한을 연장하려면 감산 규모를 결정하는 생산 기준도 함께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우디-UAE 갈등에 치솟는 유가 전망
증산 협의가 아무 결론 없이 종료하면서 새로운 유가전쟁 위험에 가능성이 커졌다.
OPEC+ 회원국 이라크의 총리에게 금융컨설팅을 제공하는 자문위원은 OPEC+ 합의 결렬로 유가전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 금융고문인 마자르 모하메드 살레는 이라크국영통신(IRA)을 통해 “OPEC 산유국들 사이 이해와 합의가 사라졌다”며 유가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OPEC 산유국들의 증산은 바람직하지 않은 가격 불균형을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 원유공급 과잉을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회원국 사이 조정되는 방식으로 실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UAE는 OPEC+의 주도 국가이자 아랍연맹의 맹주인 사우디의 결정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에 이 같은 UAE의 반발은 이례적이란 것이 업계 반응이다.
원자재 투자 전문회사인 어게인캐피털의 존 킬더프 전문가는 월스트리트저널(WSJ)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코로나19가 산유국들을 연대하게 만들었지만 코로나19 상황이 끝나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연대에 금이 가고 있다”며 "UAE는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보다 낙관적으로 전망하면서 감산기준을 완화해야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사우디와 UAE 사이에서 단순 이견이 아니라 그동안 양국 간 발생한 여러 갈등들이 함께 작용하고 있어 앙금을 푸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치적 문제도 이번 협의 결렬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카타르의 알자지라 방송은 이번 회의 결렬에 대해 “UAE가 2019년 예멘 후티반군과 사우디 주도 아랍연맹 간 전쟁에서 병력을 대부분 철수시킨 이후 양국 간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며 “사우디가 올해 1월부터 일방적으로 카타르에 대한 제재수위를 완화한 것이나 코로나19 델타변이 위험성을 이유로 주변국에 의사를 묻지 않고 독자적인 봉쇄조치에 들어간 것도 갈등의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