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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국가에서 석유가 생산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유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일까. 여름 드라이빙 시즌이 다가왔음에도 미국 휘발유 수요가 부진, 국제유가가 2% 가까이 급락했다.
31일 현재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전날보다 1.59% 하락한 배럴당 77.67달러,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은 1.7% 하락한 배럴당 81.7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는 5월 한달 동안 4.9% 하락해 지난해 12월 이후 최악의 월간 하락 폭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브렌트유는 6.8% 하락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일일 평균 휘발유 수요가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한 860만 배럴로 집계했다. 또 지난주 미국의 원유 재고는 416만 배럴 감소했으나 휘발유 비축량은 200만 배럴 증가했다고 전했다.
일부 OPEC+ 국가들이 감산을 선언하며 국제유가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국제유가 하락, 이유는?
지난해부터 OPEC+ 회원국들은 유가를 끌어올리고 최대의 수익을 내기 위해 하루 220만 배럴에 달하는 자발적 감산을 지속해왔다. 공급을 줄여 유가를 끌어올리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이들의 예상과 달리 유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7일 OPEC의 자발적 감산을 언급하며 “2024년 일일 생산량이 2023년 4분기와 변하지 않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전 세계 공급량의 2% 가량을 감축하기로 했지만 동맹국들의 생산량이 매월 초과 달성을 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석유 재고가 계속 증가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불안한 중동 역내 상황 등 국제유가 변동 가능성은 다양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의 국제유가 하락은 OPEC의 회원국 중 ‘약속 위반’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코노미니스트는 “회원국 중 일부가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할당량을 초과해 판매하고 있다”면서 다른 생산자들의 감산노력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원자재 컨설팅기업 리스타트에너지에 따르면 지난달 자발적 감산에 참여한 국가들을 공동 목표보다 80만 배럴 이상을 더 생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게인 캐피털의 존 킬더프 파트너도 로이터에 “지난주 연휴인 주말을 앞두고 휘발유 가격 상승을 기대했지만, 정유사들이 휘발유 공급을 쏟아내면서 제품 재고를 고갈시키기에는 공급이 너무 많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 美연준 고금리 지속 영향도
불안정한 금리도 국제유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기준금리 인하시점이 불분명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30일(현지시각) 연준 인사들의 말을 인용, “연준 관계자들 금리인하를 고려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했다”며 그 영향이 유가에 미쳤다고 보도했다.
로리 로건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30일 로이터통신을 통해 “여전히 인플레이션 상승 리스크(위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면서 “연준이 지표를 보고 대응 방안을 결정할 때 유연성을 유지하고 모든 선택지를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커지며 환율은 1200원 대로 내려왔다. 당초 시장은 올해 6월~9월 중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측, 연내 3회 이상의 금리 인하를 기대했다.
최근에는 ‘금리 인상’까지 대두되는 상황이다. 엔화가치가 34년만에 최저치를 찍으며 환율은 더욱 상승했고 중동의 지정학적 분쟁까지 더해지며 금리 인하 시기는 점점 늦어지고 있다.
경기가 좋아져야, 즉 금리가 낮아져야 사람들의 소비심리와 함께 공산품의 생산성은 올라간다. 하지만 경기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위축된 지갑은 유가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10개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현재 수준의 감산을 1~3개월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Saudi 24
◆ 내달 2일 OPEC+ 회의 개최…예상 시나리오는?
국제유가를 둘러싼 눈치게임이 벌어지는 가운데 내달 2일 개최하는 OPEC+회의를 앞두고 회원국들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우선 이라크는 지난 5월 11일 바그다드에서 석유 라이센스 라운드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나 “이라크는 원유 생산을 충분히 줄였으며, 감산 연장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날 동맹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입장을 바꾸긴 했으나, OPEC+의 감산 방침에 일방적으로 협조할 의향은 없다는 생각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앙골라는 이미 지난해 말 OPEC+의 2024년 감산 결의에 반발해 올해 1월 OPEC+를 탈퇴하기도 했다.
일부 외신과 각국 싱크탱크들은 경제 제재를 받는 일부 국가가 OPEC+의 감산 결의를 어기고 원유를 증산, 중국 등 다른 국가에 팔아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일부 업계에서는 OPEC+ 정례회의에서 3분기까지 현 자발적 감산 기조를 연장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또 “감산 연장 기간이 연말까지 확장될 가능성도 잔존한다”면서 “증산하는 결정은 매우 낮은 확률의 시나리오”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