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민수 기자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주총회에서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상실하면서 최근 주주권 강화 기조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일단 시장은 이번 결과가 한국 자본시장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일각에선 국민연금 등 공적기금이 민간기업 경영에 개입한 선례를 만들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사진=뉴스핌DB] |
이 가운데 조 회장 연임안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에 따르면 의안 통과를 위해선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커트라인인 66.66%에 2.5%포인트 부족한 조 회장은 지난 1999년 이후 20년 만에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에서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여기에는 11.56%를 보유해 2대주주에 올라 있는 국민연금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이하 수탁위)는 지난 25일과 26일 이틀간 회의를 열고 조 회장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 침해 이력이 있다며 연임에 반대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시장에선 주주 의결권 강화가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너 일가라는 이유로 회사를 마음대로 운영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대주주들이 시장과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기업가치 상승을 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앞으로 주주들이 반대하거나 원하지 않는 정책들을 대주주가 무작정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다수의 주주들이 원하는 쪽으로 의사 결정하게 되면 결국 기업가치 상승에도 호재”라고 진단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조양호 회장 재선임 실패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경영진 교체가 일어난 첫번째 케이스”라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오너에 대해 주주들이 책임을 물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진=김승현 기자] |
안정환 BNK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주주는 회사 권리를 가진 소유주이므로, 회사 경영진이 잘못할 때 제안 또는 제언을 하는 것이 선진화된 문화”라며 “주주들이나 국민 정서가 조 회장이 꼭 경영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국면연금과 같은 공적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관해선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개입할 여지를 만들 수 있고, 회사 발전을 위한 투자집행 대신 의결권 방어에 자원에 투입되는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논리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국민연금이 경영에 간섭한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며 “한국처럼 주식시장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순작용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고 꼬집었다.
안 본부장도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돕거나 조언하는 일이 활성화되는 것은 맞지만 경영권 탈취는 문제”라며 “향후 주주제안이나 행동주의펀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 위해서라도 국민연금의 독립성 확보와 함께 의결권 행사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 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현 제도 하에선 기업이 가진 자원과 운영자의 관심이 국민연금보다 많은 우호지분을 확보하는데 쏠릴 수 있다”며 “국민연금이 정권으로부터 독립하는 구조를 만들고, 연금을 쪼개 시장 참여 비중이 큰 기형적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 연구위원 역시 “공적기금의 의결권 행사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의사 결정 과정의 투명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결국 객관적이고 투명한 의사 결정 보장 여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mkim0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