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한 지난 1일. 삼성전자 반도체부품(DS)부문 구매 담당 실무자는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경쟁사인 TSMC 공장 근처에 있는 일본 스텔라의 불화수소 공장을 찾아 제품 공급을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날 국내 불화수소 생산업체인 솔브레인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업체 구매 담당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불화수소 공급량을 늘려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문의 전화였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과 교수는 3일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강화 발표 이후 국내 주요 반도체 업체 임직원들이 재고를 확보하느라 초비상이 걸렸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 전례가 없었던 반도체업계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강화한 품목은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소재다. 이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소재는 에칭(식각)과 세정 공정 등에 사용되는 고순도 불화수소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광범위한 공정에서 사용되는 소재다. 독성이 강하고 변질될 우려가 있어 재고 관리가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2012년 경북 구미 지역에서 불산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한 뒤 국내 공장이 자취를 감췄다”며 “기업별로 확보한 재고가 2~3주 분량”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인쇄하는 노광 공정에 쓰이는 감광액에 대해선 삼성전자가 다급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등 삼성전자의 차세대 공정 라인에 쓰이는 일본산 감광액을 대체할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이런 감광액은 스미토모, 신에츠, JSR 등 일본의 3개 화학업체 정도만 공급할 수 있다. 장비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한 임원이 최근 JSR의 벨기에 공장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하느라 당초 잡혔던 약속을 줄줄이 깼다”고 전했다.
경제계에서는 일본 정부가 다음달 1일 ‘수출무역관리령’을 개정해 한국을 안보상 우방국가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할 경우 국내 제조업 기반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좌동욱/고재연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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