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통해 iOS를 내세우는 애플과 대립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하드웨어 동맹군의 주력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3개 회사는 서로 협력하면서 시장 존재감을 키우거나, 혹은 맞잡은 두 손을 그대로 두면서 또 다른 한 방을 준비하는 입체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출처=타이젠
삼성과 구글의 복잡한 심경
하드웨어 제조 기반이 없는 구글은 모바일 시장에서 안드로이드를 출시해 운영체제가 없는 제조업 강자 삼성전자와 손을 잡았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갤럭시를 중심으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 자리를 차지했고 구글은 삼성전자 (KS:005930) 및 삼성 홈그라운드인 한국 시장 개발자 생태계를 적극 빨아들여 글로벌 안드로이드 제국을 건설했다.
두 기업이 마냥 행복한 동행만 거듭한 것은 아니다. 운영체제가 없는 삼성전자가 자체 운영체제를 구축해 탈 구글을 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공개한 바다 운영체제는 결국 실패로 끝나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이후 등장한 타이젠 운영체제도 초기 인도에서 출시되는 갤럭시Z 시리즈에 일부 탑재되는 등의 성과를 올렸으나 결국 스마트폰 운영체제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2012년 6월 첫 공개된 타이젠은 초반 삼성전자의 강력한 하드웨어 플랫폼에 기대어 급성장을 했지만 결국 정점을 찍지 못하고 동력을 상실했다.
삼성전자의 탈 구글 운영체제 시도에 구글 선다 피차이 CEO가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 등 긴장이 감도는 상태에서 삼성전자는 일단 타이젠을 스마트폰이 아닌 웨어러블 중심의 운영체제로 전환시켰다. 모바일의 주류인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에서 안드로이드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마저도 무위로 돌아갔다. 삼성전자가 웨어러블의 스마트워치에 타이젠 운영체제를 지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구글의 새로운 스마트워치 운영체제인 구글웨어에 통합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구글I/O에서 구글은 자사가 지금까지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에 지원하던 웨어 운영체제를 삼성전자의 타이젠과 통합될 것이라 밝혔다.
구글웨어 생태계. 출처=구글
타이젠을 탑재한 삼성전자 갤럭시워치는 10%의 점유율로 고전하며 애플워치의 애플에 밀리는 상황이다. 그 연장선에서 삼성전자는 독자 운영체제인 타이젠을 포기하고 구글과 함께 통합 운영체제를 가동하면서 갤럭시워치의 고질적인 약점인 다양한 앱 사용이 가능해지는 기회를 잡았고, 구글은 스마트워치 운영체제 시장에서 애플을 견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타이젠 동력이 상실된 가운데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에 이어 스마트워치에서도 다시 하드웨어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구글은 운영체제에서 삼성전자의 반격을 진압하고 안드로이드 동맹군의 진영을 더욱 튼튼하게 구축하게 됐다.
구글 텐서. 출처=트위터 갈무리
'예민한' 텐서의 등장
구글의 뜻대로 이루어진 '하드웨어는 삼성전자, 소프트웨어는 구글'이 책임지는 균형은 최근 다시 구글의 의지에 따라 기울고 있다. 구글이 최근 하드웨어로의 진격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구글은 레퍼런스 스마트폰인 넥서스, 모듈형 프로젝트 아라를 통해 입체적인 하드웨어 전략을 시범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변화는 넥서스가 픽셀로 브랜드를 바꾸고 조금씩 레퍼런스 스마트폰 이상의 진격전을 보이며 시작됐다. 픽셀 시리즈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흔들 정도는 아니지만 구글이 작정하고 스마트폰 하드웨어 제작에 임하고 있다는 신호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구글은 여세를 몰아 오는 4분기 출시되는 픽셀6에 자체 모바일 AP인 텐서를 지원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퀄컴의 스냅드래곤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구글이 자체적으로 설계한 모바일 AP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미묘한 상황이다. 일단 구글이 자체 모바일 AP를 설계한 후 파운드리 파트너로 삼성전자를 낙점할 수 있다는 점에는 고무적이다. 아직 삼성전자와 구글의 정식 입장이 나오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지만 삼성전자와 구글의 과거 협력을 돌아보면 업계에서는 TSMC 보다는 삼성전자가 구글의 텐서 파운드리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파운드리 사업 매출을 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문제는 스마트폰 시장이다. 구글이 삼성전자의 운영체제 진출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관련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결국 타이젠도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해 구글과 협력하는 선에서 스마트TV 등으로 밀린 상태다. 여기에 구글이 픽셀 등으로 하드웨어 스마트폰 시장 로드맵에 드라이브를 걸고 자체 모바일 AP를 설계하는 순간, 삼성전자와 구글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격돌할 수 밖에 없다.
구글은 조만간 크롬북에도 텐서를 적용하는 한편 하드웨어 전반에 대한 입지를 강화할 전망이다. 애플이 팔로알토 세미컨덕터를 시작으로 2019년 인텔 모뎀칩사업부까지 인수해 팹리스 역량을 기은 후 M1으로 통칭되는 탈 인텔을 선언한 상태에서, 구글도 하드웨어 역량을 강화해 이를 스마트폰 외 다른 영역까지 확장시킬경우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애플 (NASDAQ:AAPL) M1처럼 당분간 하드웨어 수직계열화는 모든 전자 기업들의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구글의 이러한 전략이 일회성으로 그칠 가능성도 낮다.
픽셀6 랜더링 이미지. 출처=갈무리
삼파전의 경제학
협력의 대명사인 삼성전자와 구글의 미묘한 신경전이 물밑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이들의 대척점에 있는 애플도 날카롭게 움직이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치열해지며 화웨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자 중저가 라인업은 중국 샤오미가, 프리미엄 라인업은 애플이 빈 공백을 장악하는 장면에 시선이 집중된다. 여기에 애플은 휴대폰 사업 철수를 선언한 LG전자와 손을 잡고 8월부터 국내에서 LG베스트샵을 통해 아이폰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북미에서는 강력한 프로모션으로 삼성전자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애플의 위탁제조 전략이다. 중국의 위탁생산 기업인 럭스쉐어가 애플 아이폰13 물량을 일부 소화하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폭스콘과 페가트론의 물량에는 턱없이 부족한 3%의 물량이지만 미중 패권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탈 중국을 추진하는 폭스콘 및 페가트론 대신 중국 당국의 지원이 가장 집중되고 있는 럭스쉐어에 애플이 신형 아이폰13 물량을 최초로 맡긴 점이 눈길을 끈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압박이 극에 달한 가운데 반도체 및 ICT 측면서 미국의 선봉에 선 구글과, 아이폰13에 맞서 폴더블 폰으로 새로운 시도를 벌여야 하는 삼성전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순간이다. 협력과 대립을 반복하는 글로벌 기업 삼인방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