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정모씨(65)는 11월이 두렵다. 그는 은퇴 후 매달 85만원의 연금에 의지해 살고 있다. 그런데 실거주하는 공덕동 아파트 한 채의 공시가격이 뛰면서 집값 상승을 반영해 인상된 건강보험료 고지서가 매년 11월 날아온다. 정씨는 “2017년 말엔 17만9000원이었던 월 건보료가 작년 말 20만9000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이달 말 조정될 건보료는 23만1000원. 3년 새 월 건보료가 5만2000원, 연간으론 62만4000원 뛰었다. 정씨는 “내가 집값을 올린 것도 아니고 집값이 오른다고 소득이 느는 것도 아닌데 매년 건보료를 이렇게 올리면 어떻게 살라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내달부터 지역건보료 8245원 인상부동산발(發) 건보료 부담 급증은 정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은퇴자와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 대다수가 안고 있는 불만이다. 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3일 발표한 ‘지역가입자 건보료 조정 결과’ 자료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건보공단은 매년 11월 국세청과 지방자치단체 자료를 통해 지역가입자의 소득·재산 증감을 확인해 건보료를 조정한다. 소득은 개인사업자 등이 올 5~6월 국세청에 신고한 2019년도 귀속분을 반영한다. 재산은 올 6월 소유 기준으로 확정된 재산세 과표금액이 반영된다.
소득·재산 변동을 반영한 결과, 11월분 지역가입자 건보료는 전월보다 가구당 평균 8245원(9.0%) 늘었다.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증가액이다. 증가율은 2018년(9.4%) 후 가장 컸다. 변동된 건보료는 이번주 각 가정에 고지된다. 납부 기한은 다음달 10일까지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증가율은 2015년 5.1%, 2016년 4.9%, 2017년 5.4% 등 매년 4~5%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2018년 9.4%, 작년 7.6% 등 증가폭이 확 커지고 있다.
지역가입자 건보료가 뛴 것은 집값이 많이 올라서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 실패로 주택 시세 상승 속도가 빠른데, 정부는 인위적으로 공시가격을 높이는 정책까지 펴고 있다.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현실화율)을 인상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그 결과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은 2017년 4.4%, 2018년 5.0%, 2019년 5.3%, 올해 6.0% 등으로 매년 커지고 있다. 서울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작년과 올해 각각 14.2%, 14.7% 올랐다.
공시가격을 기반으로 한 보유세가 급격히 뛰고 건보료까지 덩달아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소득이 미미한 은퇴자 사이에선 “건보료 부담이 너무 크다”는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케어’에 건보료율도 대폭 인상올해는 건보료 부과 소득이 확대된 것도 보험료 상승에 일조했다. 정부는 올해 11월부터 분리과세 대상 금융소득과 주택임대소득에도 건보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금융소득의 경우 연 1000만원 초과 2000만원 이하 이자·배당소득, 주택임대소득은 연 2000만원 이하가 대상이다. 지금까지는 금융·주택임대소득이 2000만원을 넘지 않으면 건보료를 안 냈지만 앞으로는 내야 한다는 뜻이다. 제도 변화로 약 10만4000가구가 건보료를 새로 내거나 건보료가 증가한다고 건보공단은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건강보험료율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건보료율 인상률은 2015년 1.35%, 2016년 0.9%, 2017년 0%, 2018년 2.04%였다. 하지만 작년엔 3.49%, 올해는 3.2% 인상됐다. 건강보험의 보장을 대폭 확대하는 ‘문재인케어’ 정책으로 건보 재원이 많이 필요해지자 건보료율을 대폭 올린 것이다.
이런 탓에 직장가입자 건보료도 증가 일로에 있다. 직장가입자 건보료 증가율은 2017년 2.6%, 2018년 4.8%, 작년 6.7% 등 매년 커지고 있다. 내년 1월에도 건보료율 2.89% 인상이 예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소득이 많지 않은 은퇴자를 고려해서라도 공시가격 인상 정책의 속도를 늦추고, 전 세계에 유일한 ‘재산보험료’ 부과 체계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계에서 재산에 건보료를 물리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소득 중심으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이행 속도를 대폭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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