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삼성그룹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 계열사 주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지배구조가 요동칠 수 있어서다. 벌써부터 경제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KS:005930) 부회장 등 이 회장의 자녀들이 내야 할 상속세만 11조원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주식을 팔아 상속세를 낼 경우 삼성의 지배구조가 취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보험업법개정안 등 삼성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국회 계류 법안들이 어떻게 처리될지도 변수로 꼽힌다. 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세이 회장은 삼성전자(지분율 4.18%)와 삼성전자 우선주(0.08%),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6%), 삼성SDS(0.01%)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23일 종가 기준으로 18조2271억원어치다. 상속세는 상속 시점 전후 총 4개월간의 평균가액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30억원을 초과하면 최고세율인 50%의 세율이 매겨진다. 여기에 최대주주 및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지분에 대한 20% 할증이 더해진다. 세금을 자진 신고할 때 3%의 공제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해도 전체 상속세 규모가 11조원 선에 달할 전망이다. 역대 기업인 상속 사례 중 최대 규모의 세금을 물게 될 것으로 경제계는 보고 있다. 이 회장 상속인들의 상속세 신고·납부 기한은 내년 4월 말까지다.
이 회장의 법정상속인은 배우자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첫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둘째 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이다. 법정상속분을 따지면 홍 전 관장이 전체 상속 지분의 3분의 1을, 자녀들이 9분의 2씩을 갖는다.
경제계에선 이 회장이 삼성그룹 승계를 고려해 유언장을 작성해 놓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딸인 이 사장과 이 이사장에게 법정상속분보다 적은 지분을 물려주고 나머지를 이 부회장에게 줬을 것이란 관측이다. 삼성 측은 아직 유언장의 유무와 내용 등을 밝히지 않고 있다.
상속세 재원 어떻게 마련할까이 부회장이라고 하더라도 가지고 있는 자산만으로 상속세를 마련할 수는 없다. 현재 그의 수입은 배당금(지난해 1426억원)뿐이며 보수는 2017년부터 받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이 지배구조 유지에 꼭 필요하지 않은 지분을 순차적으로 매각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연부연납 제도도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부연납은 연이자 1.8%를 적용해 첫 세금 납부 때 내야 할 총액의 6분의 1만 내고 나머지를 5년간 분할 납부하는 방식이다. 현재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고 구본무 회장에게 물려받은 재산에 대한 상속세 9215억원을 이 방식으로 내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경제계에선 이 회장 별세 후 삼성이 계열분리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장남인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물산과 생명 등 주력 계열사를 가져가고, 이 사장과 이 이사장은 일부 계열사를 물려받아 독립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계열분리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사그라든 상태다. 이 사장에겐 호텔신라 지분이 아예 없다.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주식 스와프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삼성에 이사회 경영이 자리 잡은 상황에선 쉽지 않은 시나리오다. 이 이사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오너가문 지배력 약화 불가피경제계에선 이 회장 별세로 삼성 오너가문의 그룹 지배력이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상속세 마련을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지분을 내다 팔 수밖에 없어서다. 외부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힘든 투쟁을 벌이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회에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도 변수다. 개정안은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보유액 평가를 취득원가가 아니라 현재 시장가로 계산하고 이 금액이 ‘총자산의 3% 이내’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생명(8.51%)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운데 20조원어치 이상을 처분해야 한다. 삼성전자 지분이 외부로 넘어가면 이 부회장의 우호지분도 줄어든다.
경제계에선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이 부회장이 아버지의 삼성전자 지분(4.18%)을 온전히 물려받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2015년 6월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문제에 어깃장을 놓은 것과 같은 상황이 언제든지 연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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