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손꼽히는 과밀 도시 런던의 한복판에 한국 건설업체 GS건설이 23층 높이의 모듈러(조립식)호텔을 세운다. GS건설의 유럽 자회사이자 고층 철골 모듈러 전문공사업체 '엘리먼츠 유럽'은 2022년 4월 사업을 수주한 후 2년6개월 동안 숨가쁜 행보를 달려왔다.
지난 10월 직접 가본 GS건설 엘리먼츠 유럽의 모듈러호텔 현장은 예상보다 협소한 면적에 내심 놀라웠다. 복잡한 런던 빌딩숲 사이의 좁은 공간에 건축이 가능한 공법이라는 증명이었다.
실제 눈으로 확인한 모듈러공법의 강점은 정교함이었다. '뚝딱뚝딱'이 아닌 매우 세밀하고 치밀한 공정이 필요했다. 런던의 금융 중심 권역 'City of London'(시티 오브 런던)의 뱅크 스트리트역에서 북쪽으로 1.3㎞ 떨어진 모듈러호텔 현장은 런던 도심 내에서도 손꼽히는 오피스 번화가에 위치한다.
대지 면적 970㎡에 높이 23층, 연면적 1만1101㎡ 규모로 짓는 이 건물은 뼈대를 이루는 외관 공사를 끝내고 현재는 내부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 현장을 지휘하는 김수 GS건설 해외 프리패브(Prefab) 사업담당은 "전통 시공방식이 터파기 후 철골(H-빔)을 세우고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것과 달리 모듈러 공사는 공장에서 대형 세그먼트(콘크리트 구조물)를 제작해 현장으로 운반·조립한다"고 설명했다.
모듈러 공법은 흔히 블록을 쌓듯 올리는 방식으로 알려져 비교적 간단할 것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공사 과정에서 단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정교한 작업이 요구된다. 소음과 분진이 적은 친환경 공법이자 빠른 시공 속도 등 경제성이 부각돼 앞으로 글로벌 건설시장의 트렌드가 될 전망이다.
허윤홍 GS건설 사장은 신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하며 모듈러건축의 미래 가치에 주목했다. 국내·외 시장에서 모듈러사업의 다양한 활로를 모색한 것은 허 사장의 의지로 풀이된다.
'쿵쾅쿵쾅' 소음 없이 세밀하게
모듈러호텔 현장의 막바지 기술 점검을 위해 방문한 윤응선 GS건설 프리패브 기술팀장은 "내년 6월 완공을 목표로 현재 약 70%대 공정률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건물의 큰 틀을 완성했고 내부 인테리어 등만 남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모듈러호텔 건설현장의 양쪽 옆은 오피스 빌딩들이 밀착해 있다. 바짝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로 사람 두어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이다. 현장의 앞과 뒤도 좁은 왕복 2차선 도로와 저층 공동주택이 몰려있어 건물 밀집도가 서울을 연상시켰다.
소음이 적은 것도 장점이다. 도심 한복판의 건설현장에서 공사 소음은 시공사들의 비용 리스크로 연결된다. 하지만 세그먼트 조립이 완성된 현장은 소음 없이 작업자들의 분주한 움직임만 느껴졌다. 자체 공장에서 조립한 세그먼트를 운송하기 때문에 탄소배출 등 환경오염의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건물 전체 무게를 지탱하는 하부의 골조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이다. 상부 구조인 지상 6층부터 옥탑층까지는 총 240개의 세그먼트가 적용됐다.
김 사업담당은 "상부 객실 한 개당 한 개의 세그먼트로 구성된다"며 "세그먼트는 런던 북서쪽 버밍엄시티 텔퍼드에 위치한 공장에서 제작돼 현장으로 운송된다"고 설명했다.
안전 위해 건물 일부만 조립 형태 시공
건물의 지하층은 호텔 부속시설과 기계실, 지상 하층은 오피스, 중층은 호텔 로비로 구성된다. 지상 1~4층은 오피스, 5~22층은 호텔이고 꼭대기 23층은 옥탑층인데 6층부터 꼭대기까지 모듈러 공법이 적용됐다.
모듈러공법이라고 해서 건물의 모든 구조가 조립 형태가 아닌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윤 기술팀장은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하부의 코어가 단단해야 상부 세그먼트의 정밀한 조립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완성된 건물 골조 밖에서는 현장 작업자가 섀시를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각 세그먼트의 조립이 완성된 상태로 영상을 통해 조립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호텔 내부에서 직접 확인한 세그먼트의 접합 부위는 콘크리트 타설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 글로벌 건설업계에서는 친환경과 노동력 부족 문제, 생산성 향상 등을 위한 해법으로 모듈러공법을 주목한다. 영국 정부도 이 같은 이유로 모듈러공법 시공을 권장한다.
모듈러호텔 내부를 둘러보며 느낀 점은 개방감보다 실용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었다. 대형 호텔보다 1~2인 숙박에 적합한 면적과 구조를 갖췄다. 오피스는 중아에 위치한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미음(ㅁ)자 형태이기 때문에 입주 업체가 자유롭게 내부를 구성할 수 있다.
맑은 날에도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는 영국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현지 진출 기업들은 공사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GS건설은 무결점 완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 사업담당은 "하루에 작업이 가능한 세그먼트가 8개인데 올 초 유난히 비바람이 거셌고 2021년 8월 토지 계약부터 각종 까다로운 인·허가 과정을 거친 시간들을 돌아보니 보람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