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4조원이 넘는 주식을 내다 팔았다. 외국인이 물량을 쏟아내면서 코스피지수는 2100선, 코스닥지수는 700선 아래로 나란히 주저앉았다.
외국인투자자와 긴밀히 교류하는 각 증권사 해외영업 담당자 및 해외법인장들은 한국 증시를 떠난 외국인 자금이 당분간 방향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중 무역분쟁과 미국의 금리인상 같은 대외변수에다 기업 성장성 둔화, 기업 실적에 부정적인 경제정책 같은 국내 문제가 단단히 얽혀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수급만 쳐다보는 시장
한국 증시가 맥없이 무너지는 가장 큰 요인으론 외국인들의 ‘팔자 공세’가 꼽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4조205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월별 기준으론 4조2950억원을 순매도한 2015년 8월 후 3년2개월 만의 최대 규모다. 올 들어선 총 6조2664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연기금 등 국내 수급 주체가 사라진 상황에서 외국인투자자 매도가 시장을 좌우하고 있다”(위윤덕 DS자산운용 대표)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내 증권사 해외법인장과 해외영업 담당자들은 한국 증시에 우호적이던 외국인투자자와 애널리스트마저 부정적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김태훈 삼성증권 홍콩법인장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가 강세냐 약세냐를 놓고 논쟁했지만, 지금은 약세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라며 “이제는 약세장이 얼마나 더 이어질 것인지, 추가 조정에 어떻게 대비할지 등으로 관심이 모이고 있다”고 전했다.
미·중 무역분쟁과 미국 금리인상 등 대외변수가 외국인이 한국 시장을 빠져나가는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한 증권사 국제영업부 부장은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을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국가로 보고 중국 경기 전망에 따라 한국 투자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무역분쟁 초기에는 투자심리를 악화시키는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중국 경기지표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주면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금리인상에 따라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서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신윤섭 NH투자증권 해외영업부장은 “지난 3월부터 금리가 역전되면서 거시경제 지표에 따라 투자하는 펀드 등이 한국 증시 비중을 줄였다”며 “한국은행이 다음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올려도 미국 역시 12월에 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것이기 때문에 금리차에 따른 자금 유출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내외 악재 겹친 한국 증시
한국 상장사들의 성장성이 높지 않다는 것도 외국인투자자의 공통된 지적이다. 신 해외영업부장은 “자동차 화학 화장품 등 과거 한국 증시를 이끌었던 업종의 투자 매력이 모두 떨어진 데다 반도체 가격 고점에 대한 우려가 많다”며 “중국이 MSCI 신흥국지수에 편입되면서 수급 또한 옮겨가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경제정책 방향성도 외국인이 투자를 꺼리는 이유로 꼽힌다. 기업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만한 정책이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해외영업 본부장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은 기업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요인”이라며 “한 외국 기관투자가가 한국 정부가 기업에 부정적인 정책을 펼치는 이유를 물어 당황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무역분쟁 등 대외 여건이 개선되고 경제정책 방향이 바뀌는 게 외국인 수급 변화의 전제조건이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증권사 국제영업부장은 “정부 정책 불확실성이 낮아지는 등 투자환경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외국인 매도세가 잦아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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