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금리 급등으로 주식시장이 요동치자 그간 증시를 이끌어온 성장주의 시대가 저물고 가치주의 시대가 왔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증시에서 채권금리 상승에 따라 정보기술(IT)·바이오 등 성장주가 대거 조정받으면서 국내에서도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평가받은 가치주에 눈길을 돌릴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장주 지고 가치주 뜬다”
4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지수는 145.57포인트(1.8%) 떨어진 7859.51로 장을 마쳤다. 페이스북(-2.2%), 애플(-1.8%), 아마존(-2.2%), 넷플릭스(-3.6%),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2.8%) 등 대형 인터넷 기술주를 뜻하는 일명 ‘FAANG’ 종목이 모두 큰 폭으로 하락했다.
올 들어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이며 나스닥지수 사상 최고치 경신에 크게 기여한 대표적 성장주다. 상대적으로 기술주 비중이 낮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0.8% 하락하는 데 그쳐 낙폭이 나스닥만큼 크지 않았다.
증권업계에서는 이 같은 결과를 두고 “본격적인 시장금리 상승 국면에 접어들면서 성장주와 가치주 간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달 들어 지난 4일까지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속한 성장주와 가치주 등락률을 비교한 결과를 보면 성장주는 2.5%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가치주는 0.2% 상승했다. 채권금리 상승으로 주식에 대한 투자심리가 악화된 상황에서 보유자산 및 이익 수준 대비 고평가된 성장주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일부 국내 전문가도 “가치주 위주로 투자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지난달 펀드 가입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금리 인상기 초반 유동성이 축소되는 시기에는 성장성만을 고려하던 투자심리가 점차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과 주주 환원 정책 등을 중시하는 보수적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고 설명했다.
◆가치주펀드도 수익률 ‘쑥’
이런 분석은 한국 증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게 가치주 지지론자들의 견해다. ‘고(高)PER’ 종목이던 인터넷주와 바이오, 미디어·엔터테인먼트주 등 성장주가 조정받고, 주가 대비 자산가치가 높은 지주회사와 금융주 등에 매수세가 몰릴 것이란 관측이다.
최근 일부 바이오주와 엔터주 등을 중심으로 본격화된 조정 움직임은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 제약·바이오 종목으로 구성된 KRX헬스케어지수는 지난달 27일 이후 8.31% 떨어져 코스피지수(-3.06%)보다 하락폭이 컸다. 반면 같은 기간 은행과 보험, 증권사 등이 속한 KRX300금융지수는 3.04% 상승해 하락장 속에서도 돋보이는 성과를 냈다.
그간 부진했던 가치주 펀드도 최근 선전하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한국밸류10년투자1’ 펀드는 4일 기준 1.30%의 1개월 수익률을 나타내 평가대상 지수인 코스피200 등락률(-0.32%)을 웃돌았다. 이 펀드는 지난 6개월간 코스피200 대비 부진한 성과를 냈지만 지난달 말부터 펼쳐진 약세장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마라톤A’ 역시 1개월간 0.90% 수익률로 벤치마크보다 좋은 성과를 거뒀다. 김영환 KB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가 10월 들어 가치주 강세로 전환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최근 헬스케어 종목 조정도 이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주에 대한 외면은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탈리아 등 유로존 불안이 완화되면서 달러와 금리 상승세가 진정되면 3분기 실적이 양호한 성장주 중심의 반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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