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선도 국가였던 일본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일본은 한때 전 세계 비트코인의 성지로 불렸지만 일본에 둥지를 튼 마운트곡스, 코인체크 등 굴지의 코인거래소들이 연달아 해킹 사태로 파산하거나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엄한 규제의 상징이었던 일본, 180도 변신
대규모 해킹 사태는 오늘날 부활의 기반이 됐다. 규제를 강화했던 덕분에 산업 진흥의 토대가 되는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정비할 수 있었다. 일본 금융청(FSA)은 2016년부터 가상자산 관련 법령을 개정해 가상자산 종류 분류, 가상자산 사업자의 준수 사항, 토큰 증권과 관련한 지침 등을 새롭게 짰다.
2021년 10월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산업 진흥을 추진 중이다. 기시다 내각은 가상자산 시장을 비롯한 웹3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할 대안으로 본다.
2022년 7월 경제산업성 산하 웹3 전담 사무처를 신설해 정부 차원의 컨트롤 타워도 세웠다. 집권당 자민당은 작년 3월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관련 정책 제언을 담은 'NFT 백서'를 냈고 그 다음달엔 웹3 백서도 발표했다. ▲가상자산 심사·발행·유통 ▲가상자산 과세 ▲스테이블 코인 ▲탈중앙 자율조직(DAO) ▲NFT 등 웹3 사업을 진흥하는 데 필요한 여러 제언을 담았다.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달러화 등 기존 화폐에 고정 가치로 발행되는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전향적이다.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지난해 6월부터 스테이블코인을 전자결제수단으로 규정했다. 스테이블 코인을 투기적 수단이 아닌 송금·결제 수단으로 인정한 것이다.
은행이나 신탁회사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일본 내 은행, 자금 이체 기관, 신탁 회사를 중심으로 엔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이어졌다.
일본 금융청(FSA)은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유통도 허가했다. 세계 유수의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들이 일본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
법인 과세 완화하고 VC 투자 활성화
최근에는 가상자산 투자 활성화를 위해 중대 결단을 내렸다. 기존엔 법인이 보유한 가상자산의 기말 가치를 평가해 법인세 30%를 부과했지만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가 옳지 않다는 지적에 법인세를 걷지 않기로 법을 개정했다. 다만 타사 발행 토큰의 경우는 락업(코인 잠금) 등 기술적 처분 제한이 존재할 때만 면제된다.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도 가능하게 했다. 벤처펀드가 토큰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했고 기업이 주식 대신 토큰으로 벤처펀드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웹3 기업의 자금 조달이 용이해지면서 일본 웹3 생태계가 탄력을 받게 됐다.
NTT 도코모와 SBI 홀딩스가 각각 6000억엔(약 38억달러)과 1000억엔(약 6억4700만달러)에 달하는 웹3 펀드를 조성하는 등 투자를 진행 중이다.
세계 최대 연기금 중 하나인 일본 정부연금투자기금(GPIF)은 최근 비트코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GPIF가 가상자산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 자차게 고무적이란 평가다.
아시아 웹3.0 시장 리서치 및 컨설팅 기업 타이거리서치는 "일본의 투자 규제가 완화되고 벤처 캐피털 회사가 암호화폐 자산을 보유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웹3시장의 투자 환경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