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국내에서는 ‘박스 대란’이 벌어졌다. 국내 골판지 원지의 7.6%를 생산하는 대양제지 경기 반월 공장에 화재 사고가 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배송이 늘어나면서 박스 수요는 급증한 상황이었다. 골판지의 원재료인 원지 재고는 전년 대비 40% 수준으로 떨어졌다. 박스 대란의 여파는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박스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대림제지, 아세아제지 등의 주가는 올해 들어 각각 16%, 17% 급등했다.
○대면 사회에서 비대면 사회로코로나19를 계기로 글로벌 산업 구조가 재편되면서 수요와 공급 불일치로 ‘쇼티지(품귀 현상)’가 발생하는 산업군이 늘고 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제지업계의 쇼티지는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산업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공급이 이에 발맞춰 따라가지 못한 경우다. 소비 회복 속도에 비해 공급 증가 속도가 받쳐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19발(發)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가처분소득은 코로나19 발생 이전보다 급격하게 늘어났다. 반면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전통산업은 투자가 급격히 위축됐다.
한국경제신문이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에 의뢰해 쇼티지가 발생했거나,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산업군을 조사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20~2021년 글로벌 경제는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경기 변동과 친환경산업의 급성장이라는 변화에 직면했다”며 “이런 변화가 맞물린 산업 영역에서 수요와 공급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회복되는 소비,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쇼티지가 가장 심각한 제품은 자동차용 반도체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NXP,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이 지난해 상대적으로 마진이 적은 차량용 반도체 대신 수요가 탄탄한 다른 산업용 반도체 생산에 주력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이후 완성차 생산이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면서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계에서는 이 수급 불균형이 최소 6개월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량용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TSMC에 주문이 몰리면서 이 회사는 제조 가격을 15%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는 비메모리와 같은 공급 부족 상황은 아니지만, D램의 경우 1분기 중순부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증가하는 수요 대비 메모리 3사(삼성전자 (KS:005930)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증설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반도체 옆에서 전력을 공급해주는 수동 부품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그 덕분에 글로벌 2위 MLCC 업체인 삼성전기 주가는 올해 들어 16% 뛰었다. ○공급 부족 수혜 독점하는 1~2위 기업들항공산업에서는 화물 운송이 새로운 캐시카우로 떠올랐다. 코로나19로 글로벌 여객기들이 운항을 중단한 반면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물동량은 증가하면서 운임이 급등하고 있다. 해운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중국발(發) 미주, 유럽향 컨테이너 물동량이 많아지는데 컨테이너선은 부족해 운임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각국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으로 친환경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1년부터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라인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면서 전기차(EV)용 배터리 생산량도 늘고 있다. 배터리 소재 중에서도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제품은 동박이다.
공급 부족 상황에서 가격이 급등하면 가장 혜택을 보는 것은 업계 1~2위 업체들이다. 동박업계에서는 글로벌 1위 경쟁력을 보유한 SKC의 수혜가 예상된다. SKC는 올해 들어 지난 1일까지 32% 상승했다. 2일 하루에만 8.43% 올랐다.
항공산업에서는 대한항공의 수혜가 기대된다. 국내 항공사 중 화물기 운용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를 기준으로 항공 화물 매출 비중은 전체의 51%에 달했다.
제지산업에서는 대림제지와 아세아제지가 실적 개선 효과를 누릴 전망이다. 손세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림제지는 제지 업종 중 골판지 원지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기업이고, 아세아제지는 시가총액 2000억원 이상 제지 기업 중 원지 매출 비중이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고재연/박재원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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