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탁=이경주 기자] 상장사인 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가 자회사에 발생한 중대 소송을 확인하고도 공시나 보도자료로 알리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자회사 한화정밀기계가 만든 HBM용 생산장비인 TC본더에 대해 특허침해소송이 제기된 사실이 있는데 '언론보도'로 뒤늦게 알려졌다. TC본더는 시장진입에만 성공하면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평가된다. 이에 관련현황이 그간 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 주가를 출렁이게 했었다. 회사측은 법적 의무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 홈페이지
◇ 예외조항 근거로 미공시 결정, 거래소에도 확인 요청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는 이달 4일 서울중앙지법에 한화정밀기계를 상대로 HBM 생산용 TC본더 특허권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더스탁’이 이날 단독보도로 시장에 처음 알린 사실이다. 한화정밀기계와 모회사 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가 피소 사실을 인지한 시점은 법원이 소장을 송달한 같은 달 13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는 검토 끝에 법적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이날까지 공시나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과 TC본더 신제품(그리핀 슈퍼본딩)
사실 자칫 의무공시사항이 될 수도 있었던 건이다.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 제8조(자회사의 주요경영사항)와 제7조(주요경영사항)를 종합하면 지주사(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는 자회사(한화정밀기계)에 청구금액이 자기자본의 100분의 5 이상인 소송이 발생하면 사유 발생일 다음 날(영업일)까지 거래소에 신고(공시)해야 한다.
그리고 해당 규정에서 정의하고 있는 '자기자본'은 일반적으로 최근 분기가 아닌 직전 사업연도 말 수치를 지칭한다. 비상장사의 경우 분기가 아닌 연간 단위로 외부감사를 받기 때문이다. 즉 공신력 있는 재무제표를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화정밀기계는 지난해 말 자기자본(자본총계)이 459억원이라 소송 청구금액이 자기자본(459억원)의 100분의 5인 23억원을 넘으면 의무공시사항이 된다. 그리고 법조계 확인결과 한미반도체의 청구금액은 23억원 이상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공시를 강제하는 소송이었다.
그런데 예외 조항이 있었다. 직전 사업연도 이후 자본총계가 늘어나는 증자를 한 사실이 있고, 또 신고나 공시를 했을 경우 증감액을 자기자본에 반영할 수 있다는 규정(공시규정 제2조, 10항)이 존재했다. 한화정밀기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 인적분할 전 법인)를 상대로 올 1분기 1700억원 상당의 유상증자를 진행해 자본총계가 2000억원 이상으로 늘어났었다. 의무 상황(자기자본의 100분의 5 이상)을 피하게 된 셈이다.
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측은 이 예외조항을 발견해 공시를 하지 않기로 했다. 더불어 거래소에 정말 의무가 없는지 검토요청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무처리는 꼼꼼히 한 것이지만 반대로 투자자들을 상당기간 불확실성에 노출되게 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 소송 뉴스에 6% 급락, 자율공시가 이상적
HBM은 전 세계적으로 핫한 AI반도체다. '전력'과 '방산' 업종과 함께 글로벌에서 성장세에 있는 몇 안되는 시장으로 꼽힌다. 그리고 HBM 생산장비인 TC본더는 한미반도체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데 그간 한화정밀기계가 시장진입을 시도해왔다. 진입에 성공할 경우 퀀텀점프 수준의 실적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한화정밀기계 TC본더와 관련한 긍정적 뉴스가 나올 때마다 모회사 주가가 크게 움직였다.
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는 올 10월 29일 종가가 4만8200원으로 전 거래일 종가(4만4100원) 대비 9.3% 급등했는데 당시 한화정밀기계 TC본더가 고객사 퀄테스트(품질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된다는 뉴스가 나온 직후였다. 인적분할 전 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의 전신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비슷한 현상을 겪었다. 올 6월 3일 종가가 22만3000원으로 전 거래일(20만5000원) 대비 8.8% 급등했는데 역시 한화정밀기계 TC본더에 대한 긍정적 뉴스가 나온 직후였다. 한화정밀기계가 SK하이닉스에 처음으로 평가용 TC본더를 공급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연장선에서 한화정밀기계는 부정적 뉴스엔 적극 대응해 모회사 주가하락을 방어했다. 올 10월 16일 한화정밀기계가 퀄테스트에서 탈락했다는 뉴스를 일부 언론이 보도하자 '오보'라며 테스트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최종 납품이 전망된다는 입장문을 했다.
(사진:한화정밀기계 보도자료)
특허침해소송은 그 자체로 한화정밀기계와 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에겐 중장기적 불확실성이 된다. 실제 이날(19일) 더스탁 보도 이후 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 종가(3만1800원)는 전 거래일(3만4100원) 대비 6.74% 하락했다. 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가 공개하지 않은 사실(피소)에 대한 파급력을 의미한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정밀기계 TC본더 사업현황이 모회사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그간 수차례 확인됐다”며 “이 점에서 피소사실을 알았을 때 투명하게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투자자들 입장에선 가장 이상적인 대응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인더스티리얼솔루션즈 관계자는 "거래소에 예외상황(증자)에 대해 검토를 요청했고 (공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에 공시하지 않은 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