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탁=이경주 기자] 2024년 말 주요 초대형IB(투자은행)들이 정기임원인사를 속속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 거취를 주목하는 거성(巨星)들이 있다.
IB업계 대부로 불리는 정영채 NH투자증권 전 사장과 DCM(부채자본시장)의 전설 박성원 KB증권 전 IB영업총괄(부사장) 등이다. 두 사람 모두 지난해 말 퇴임했는데 업계 내 존재감을 생각하면 은퇴는 이르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리고 퇴임 후 현재까지 약 1년간 경쟁사에 취직하지 않았다. 친청과의 의리를 지킬 만큼 지킨 셈이다.
업계 일각에선 메리츠증권과 같이 규모는 크지만 ECM(주식자본시장)과 DCM 등 정통IB엔 취약한 증권사들이 두 사람 영입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사진 왼쪽), 박성원 전 KB증권 부사장
◇ 신한투자증권이 직전 사례, ‘정영채‧박성원’은 헤비급
IB업계에선 조직수장(헤드)이 경쟁사 요직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기업이 M&A(인수합병)로 경쟁력을 일거에 확보하는 것과 비슷하다. DCM과 ECM은 트랙레코드가 딜 수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빅딜에 대한 경험을 쌓지 못하면 이 시장에서 영원히 후발주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 IB 수장급 영입이다. 해당 인재가 쌓아온 인프라와 노하우를 조직에 이식해 딜 수임 가능성을 높인다.
신한투자증권이 대표적인 사례다. 초대형IB를 노릴 정도로 덩치가 크지만 ECM과 DCM 순위는 만년 6~10위권에 머물렀다. 톱티어였던 적이 없다. 이에 ECM 전문가인 김상태 전 신한투자증권 사장을 영입했다. 김상태 전 사장은 미래에셋증권 IB총괄(사장)로 2021년 초까지 일하다 2022년 초 신한투자증권 대표이사로 이직해 올 연말까지 일했다.
전임자이자 회사채 전문가였던 김병철 전 신한투자증권 사장도 외부출신이다. 김병철 전 사장은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 IB본부장 출신으로 2012년 신한투자증권으로 이직해 S&T그룹 부사장과 GMS그룹 부사장을 거쳐 2020년 대표직에 올랐었다.
IB업계에서 정영채 전 사장과 박성원 전 부사장 거취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퇴임한지 1년이 지났기 때문에 친정에 대한 부담을 일정부분 덜게 된 시기다. 하물며 정 전 사장은 국내 IB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업계발전에 기여한 입지적 인물이다.
NH투자증권은 2011년부터 ‘만능 하우스’라는 평판을 얻었는데 정 전 사장이 만든 결과물이다. 정 전 사장이 2005년 IB대표로 부임하면서 7~8위였던 종합IB순위가 수년 만에 1위로 뛰었다. 고객에게 자신의 주 전공인 ECM을 넘어 DCM과 M&A, 지배구조 자문까지 해줄 수 있어야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소신에 따른 결과였다.
이른 바 IB업계에 '원스탑 솔루션'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궁극적으로는 하우스가 모든 영역에서 톱티어가 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를 본 주요 경쟁사들도 토탈솔루션을 지향하며 벤치마킹을 했다. 정 전 사장은 2018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론 업계 최초로 직원평가지표(KPI)를 ‘성과’에서 ‘과정’ 중심으로 바꿔 고객만족 극대화에 나섰다. 이 같은 전략이 실적개선으로 이어지자 경쟁사들이 이 또한 벤치마킹 했다. 정 전 사장이 IB대부라 불리는 이유들이다.
박 전 부사장은 IB업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국내 DCM 최고 전문가다. KB증권을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1년간 DCM주관실적 1위에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KB증권은 전신인 한누리투자증권 시절부터 DCM에 두각을 나타냈는데 박 전 사장 기업금융 본부장을 맡아 진두지휘한 결과였다. 해당 역량을 보고 KB국민은행이 2008년 한누리투자증권을 인수해 현 KB증권으로 발전시켰다.
◇ 메리츠증권, 부동산수익 80% ‘리스크’…정통IB 강화 필연
업계에선 메리츠증권이나 우리투자증권, 키움증권과 같이 자본력은 초대형IB에 못지 않지만 정통IB 조직은 취약한 증권사들이 두 거성 영입을 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경우 작년 정 전 사장 영업설이 이미 돌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메리츠증권이 인재영입을 가장 갈급할 것이란 관측이다. 메리츠증권은 알려져있다시피 부동산금융을 통해 성장한 증권사다. 순영업수이익이 올 3분기누적 기준 1조1547억원인데 IB와 금융부문 비중이 80%에 달한다. 그리고 IB부문 손익은 대부분 부동산PF 인수주선과 채무보증 수수료로 구성돼 있다.
메리츠증권 수익구조(사진:나이스신용평가)
메리츠증권은 부동산 호황기엔 뛰어난 현금창출력을 자랑했지만 경기가 침체된 최근 수년간엔 부동산에 쏠린 수익구조가 리스크로 돌변했다. 이에 DCM과 ECM 등 정통IB딜로 수익다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달 초 본평가 보고서에서 “메리츠증권은 우발부채를 포함해 대출과 펀드 등 부동산익스포저가 자기자본 대비 120%를 상회하는 큰 수준”이라며 “요주의자산 대부분이 해외대체투자인 점을 감안할 때 전체 부동산익스포저 중 해외 비중이 30% 수준인 점도 부담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는 부동산 중심의 수익구조 다변화를 위해 IB부문 내 기업금융과 위탁매매, 자산관리부문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며 “내부통제와 리스크관리 기조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통IB 강화가 절실한 시점에 해당 시장 최고전문가들이 재야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정영채 전 사장과 박성원 전 부사장의 역량을 가장 필요로 하는 증권사는 아마도 메리츠증권일 것”이라며 “물밑에서 이미 접촉해 설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