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탁=이경주 기자] “연말까지 앞으로 남은 딜 가운데 상장하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될 것 같다. 기관 수요가 급격히 꺾여 발행사 눈높이를 밑도는 수요예측 결과가 다수 나올 거다.”
한 대형증권사 IPO 담당자기 자조섞인 말로 평가한 2024년 연말 시장 분위기다. 연초와 비교하면 ‘극과 극’이다. 연초엔 상장일에 가격제한폭(공모가의 400%)까지 오르는 딜들이 속출하며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됐다.
연말엔 10월 말 이후 더본코리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10여개의 딜이 연속으로 상장일 종가가 공모가 밑돌고 있다. 손해율이 평균 20%에 이른다. 공모주 선점 권한을 받은 기관들도 상장일에 손절하기 바쁘다.
남은 딜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기관들은 수요예측에서 보수적 베팅을 해야 한다. 발행사 입장에선 저평가를 감수하거나 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 최근 14개사 상장일 종가 평균 손해율 20%
급격한 시장 냉각은 10월 24일 상장한 씨메스가 기점이었다. 상장일 시초가 수익률은 18.7%였지만 종가수익률이 마이너스 23%로 바뀌었다. 이후 현재(15일)까지 13개 기업이 상장했는데 더본코리아를 제외한 12개 기업이 연속으로 상장일 마이너스 종가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10월 말 이후 더본코리아를 포함해도 14개사 평균 손해율이 20.5%에 이른다.
시초가 수익률 역시 전멸 수준이다. 14개사 중 4개사를 제외한 10개사가 마이너스다. 14개사 평균 시초가 손해율은 5.5%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11월 초까지 상장했던 발행사는 공모가를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한 가격으로 정한 곳들이었다. 씨메스서부터 이달 8일 상장한 에어레인까지 총 11개사가 상장했는데 10개사가 공모가를 상초(희망밴드 상단 초과)로 정했다. 10개사 평균 상초 상승률은 20.8%였다.
직전 10월 중순까지 공모주 상장일 수익률이 20~30%대로 양호해 비슷한 시기 수요예측에서 기관들이 오버베팅을 한 결과다. 하지만 시장이 냉각하자 상초 상승률만큼의 손해를 기록하게 됐다.
그런데 11월 중순에 이르러선 공모가를 희망밴드 상단이나 상단 밑으로 정했음에도 상장일 수익률이 큰 폭으로 마이너스인 경우가 나오고 있다. 시장이 11월 초보다도 위축됐다는 의미다. 11월 12일 상장한 노머스는 공모가를 희망밴드 상단가로 정했지만 시초가 손해율은 28.8%, 종가 손해율은 35.8%였다. 다음 날안 13일 상장한 닷밀 역시 공모가를 밴드 상단가로 정했지만 시초가 손해율은 26.8%, 종가 손해율은 35.8%에 달했다.
그나마 14일 상장한 쓰리빌리언이 몸값을 대폭 낮춰 투자자 손실폭을 줄여줬다. 쓰리빌리언은 공모가를 희망밴드 상단(6500원)보다 무려 30.8% 낮은 4500원으로 정했다. 이에 상장일 시초가 수익률 20.2%를 기록했다. 하지만 종가 수익률은 마이너스 8.9%로 다시 바뀌어 손실 행렬을 잇고 있다.
◇ 12월까지 11개사 수요예측 남아...저평가 감수해야 생존
10월 말 이후 공모주를 산 기관과 일반투자자들은 시초가로나 종가로나 모두 평균적으로 손해를 봤다는 의미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시장이 짧은 기간에 너무 급속히 냉각돼 상장일에 손절(손해를 보더라도 적절한 시점에 주식을 매각) 하는 게 일이 될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가격결정 기능을 하는 수요예측 투심도 급격히 꺾일 수밖에 없다. 상장사 몸값이 평가절하 된다는 의미다. 발행사는 평가절하를 감수하던지, 아니면 철회를 택하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한다.
이미 11월 초부터 수요예측까지 진행한 발행사들의 철회가 속출하고 있다. 동방메디컬이 이달 7일, 미트박스글로벌이 11일, 씨케이솔루션이 12일에 철회신고서를 냈다. 이들은 희망밴드 내에서 공모액을 못채울 정도로 기관참여가 저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연말까지 대기주자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 문제다.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곳만 11곳에 이른다. 11월 중하순에는 △듀켐바이오 △오름테라퓨틱 △아스테라시스 △벡트 △엠앤씨솔루션 △온코닉테라퓨틱스 △파인메딕스 등이 수요예측을 시작한다. 12월 주자는 △아이에스티이 △쓰리에이로직스 △아이지넷 △데이원컴퍼니(옛 패스트캠퍼스) 등이다.
기관들은 공모액이 최소 2400억원에 달하는 엠앤씨솔루션과 900억원인 오름테라퓨틱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가격베팅을 잘못할 경우 예상보다 많은 물량을 끌어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엠앤씨솔루션은 구주매출 비중이 50%에 달하는 구조적 하자가 있어 더 민감한 딜이다.
업계에선 후발주자들 가운데 최근 쓰리빌리언과 같이 몸값 저평가를 감수하는 곳들이 다수 나와야 시장이 정상화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선 IB 관계자는 “사실 올 중순까지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것이라 정상화가 필요했는데 올 연말그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이 시기 IPO에 나선 기업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불운”이라고 말했다.
이어 “몸값 저평가를 감수하는 발행사들이 나와야 투자자들 손실이 회복되고 시장 분위기도 나아질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내년 초가 돼도 정상화를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관 평가도 비슷하다. 앞선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동방메디컬이나 미트박스글로벌 같은 스몰딜은 손해가능성이 낮아 지난달까지만해도 웬만하면 기관들이 베팅을 했던 곳”이라며 “현재는 스몰딜까지 외면하는 이례적 상황이라 철회를 택하는 발행사들이 앞으로 다수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