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로 예상됐던 미국 정부의 ‘한국산 자동차 관세 적용 여부’ 발표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당초 ‘한국은 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렸지만 발표가 지연되자 국내 자동차·부품업체들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도록 압박 수단으로 쓰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불확실성 커진 대미(對美) 통상
1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은 이날까지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여부에 대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5월 17일 이 법에 따라 수입 자동차에 관세율 25%를 적용키로 했다가 6개월 미뤘다. 유예 시한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만료됐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미국은 작년에도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으나 한국 유럽연합(EU) 등 일부 국가에 한해 면제해줬다.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한 232조 적용은 훨씬 파급력이 크다. 한국의 수출이 지난달에만 58억달러어치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큰 데다 미국 의존도가 높아서다. 산업부는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대해 232조를 적용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달 초 미국 출장 때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유예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자동차 232조 카드’를 지소미아 연장과 연계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미국의 끈질긴 설득에도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끝내 파기하면 경제 보복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란 우려다.
더 큰 문제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반도체·조선 등에도 232조를 적용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우리의 광범위한 산업에 대해 232조를 적용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며 “시나리오별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별도로 미국은 최근 한국산 단조강 부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들어가는 등 통상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단조강은 차량이나 선박 등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다. 한국의 대미(對美) 단조강 수출은 2017년 3510만달러에서 작년 6760만달러로 두 배가량 뛰었다.
○차업계 “25% 관세 땐 수출 접어야”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업계는 불안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돌출 행보를 감안할 때 예상 밖 ‘일방통행’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차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관세 부과 여부를 지소미아 등 정치적 이슈와 연계한 협상 카드로 삼으면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다를 게 없다”며 “불확실성이 너무 큰 게 문제”라고 했다.
자동차업계에 대한 ‘관세 폭탄’이 터지면 국내 생태계는 급속히 붕괴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미국에 수출되는 국산 차량은 연간 81만 대(작년 기준) 정도다. 전체 수출량의 3분의 1에 달한다. 르노삼성 한국GM 등 미국 수출이 많은 자동차회사의 생산량은 반토막날 가능성도 있다. 현대·기아차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두 회사의 지난해 미국 수출 물량은 각각 31만 대, 23만 대였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무역흑자 폭이 최대 98억달러 줄어들 것이란 연구 결과(한국경제연구원)도 있다. 자동차 부품사 8800여 곳이 줄도산 위기에 내몰릴 수 있는 규모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수입물량 쿼터(할당제)를 적용받더라도 고율 관세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며 “관세 폭탄이 현실화하면 자동차산업엔 재앙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조재길/장창민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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