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신사옥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사업을 자체 개발이 아닌, 외부 투자자와의 공동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지금이 신사옥을 짓는 데 4조원 가까운 돈을 쓸 때냐”는 주주들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오는 22일 현대차 주주총회를 앞두고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어깃장’을 놓고 있는 점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미래 자동차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내린 조치란 관측도 나온다.
○美 허드슨야드 개발사업 벤치마킹
현대차그룹은 해외 연기금 및 국부펀드, 국내외 투자펀드 등과 GBC 공동 개발을 위해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조7000억원에 달하는 개발비 부담을 분산하기 위한 것이다. 총개발비의 절반 이상을 외부 투자자에게서 끌어올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차 등 그룹 주요 계열사가 떠안아야 할 초기 투자비 부담은 2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2014년 한국전력으로부터 서울 삼성동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매입했다. 현대차(55%)와 현대모비스(25%), 기아차(20%)가 나눠 부담하는 식이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착공이 당초 계획보다 수년간 늦춰진 데다 경영 환경마저 급변하면서 투자 계획을 수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GBC 투자 가치를 높이기 위해 세계적 부동산 개발 전문업체도 프로젝트에 참여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최대 개발사업으로 꼽히는 ‘허드슨야드 개발’을 벤치마킹했다는 후문이다. 이 사업은 2024년까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서쪽 허드슨강 유역에 250억달러를 들여 초고층 건물 수십 동을 짓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미국 부동산 개발회사 릴레이티드를 비롯해 중국공상은행, 도이체방크 등 글로벌 투자회사가 대거 참여했다. 업계 관계자는 “GBC 부지는 최근 5년간 공시지가 연평균 상승률이 19.7%에 달했다”며 “건물 준공 시점에는 부지 매입 원가를 웃돌 정도로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시 인허가 거쳐 연내 착공
현대차그룹이 GBC 개발 과정에서 글로벌 투자자를 끌어들이기로 한 이유는 명확하다. 조(兆) 단위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해 자체 투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메시지다. 주주들은 그동안 현대차가 초고층 빌딩을 짓는 데 4조원 가까운 큰돈을 들이는 것에 우려를 쏟아냈다. 현대차그룹이 서울시에 내야 하는 공공기여금 1조7000억원까지 합치면 자금 부담은 5조원을 훌쩍 넘는다.
현대차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47%, 순이익은 64% 쪼그라들었다. 중국 내 공장 가동률은 2년간 50%를 밑돈다. 이르면 다음달 중국 베이징 1공장 가동을 멈춰야 할 판이다. 최고 25%에 달하는 ‘트럼프발(發) 수입차 관세폭탄’이 현실화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몽니’를 부리고 있는 엘리엇을 의식한 조치란 분석도 나온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배당 규모를 확대하고, 자신들이 선정한 인물을 사외이사에 앉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GBC 투자는 주주가치를 크게 훼손할 것”이라며 주총에서 위임장 대결까지 예고한 상태다. GBC 투자 부담이 현대차그룹의 미래차 투자 재원 확보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걱정을 불식하기 위한 조치란 시각도 있다. 현대차는 앞으로 5년간 연구개발(R&D)과 미래 기술 확보 등에 45조3000억원을 투입한다는 중장기 비전을 내놨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숙원’이던 GBC사업은 서울시 인허가 절차를 거쳐 이르면 연내 착공될 예정이다. 2023년 완공이 목표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569m인 지상 105층 규모의 업무 빌딩과 호텔, 전시·컨벤션 시설, 공연장 등으로 구성된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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