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들이 10일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실업자는 113만7000명으로 20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통계청이 10일 발표한 6월 고용 동향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다. 지난달 15세 이상 고용률은 61.6%로, 동월 기준 1997년(61.8%) 이후 가장 높았다.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28만1000명 늘었다. 정부 목표(20만 명)보다 8만 명 이상 많은 수치다.
하지만 실업률(4.0%)도 1년 전보다 0.3%포인트 올라 외환위기 때인 1999년 6월(6.7%) 이후 가장 높았다. 실업률은 올 들어 6개월 연속 4%대 고공행진 중이다. 1999년 6월~2000년 5월에 12개월 연속 4%대를 기록한 뒤 처음이다. 취업준비생 등을 포함한 청년층 확장실업률(체감실업률)도 사상 최대인 24.6%였다.
이런 현상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고용시장에서 일자리 기회가 늘다 보니 취직에 성공한 사람과 구직에 나선 사람이 동시에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르다. 취업자가 증가한 것은 정부가 세금으로 마련한 ‘노인일자리’ 영향이 크고, 민간의 질 좋은 일자리는 구하기 어려우니 실업자가 늘어난다는 해석이다. 재정일자리 착시 효과로 인해 고용지표가 왜곡돼 있다는 얘기다.
○재정일자리 효과 빼면 고용도 제자리걸음
재정일자리 효과를 걷어내니 역대 최고라는 고용지표는 ‘빛 좋은 개살구’임이 드러났다. 정동욱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재정일자리의 고용 증가 효과는 10만 명 정도”라고 말했다. 이 10만 명이 없었다면 지난달 취업자 증가 수는 18만 명으로, 정부 목표(20만 명)에 못 미친다. 이때 15세 이상 고용률도 61.4%로 낮아져 고용 한파가 닥쳤던 작년 6월(61.4%)과 같은 수준이다. 재정일자리 효과가 없으면 양호한 고용이란 ‘빛’은 사라지고 역대 최고 실업률이란 그림자만 남는 셈이다.
연령별 취업자를 보면 이런 점이 더 확연해진다. 지난달 60세 이상 취업자는 37만2000명 늘어나 전체 취업자 증가 폭을 크게 웃돌았다. 재정일자리가 대부분 노인에게 공급된 영향이다. 반면 경제의 허리인 40대 취업자는 18만2000명 줄었다. 2015년 11월 이후 44개월 연속 감소다. 지난달 3만2000명 감소한 30대 취업자도 21개월째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개선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청년(15~29세) 취업자마저 4000명 줄었다.
초단시간 근로자도 급증세다. 지난달 주당 근로시간이 17시간 미만인 근로자는 1년 전보다 20만9000명 늘어난 181만3000명이었다. 전체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6%로 동월 기준 역대 최고다. 작년 6월엔 5.9%에 그쳤다.
○제조업 일자리 15개월 연속 감소
산업별로는 정부 재정 투입 사업이 많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취업자가 12만5000명 늘었다. 17개 업종 가운데 취업자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 반면 양질의 일자리로 분류되는 제조업 취업자는 6만6000명 줄었다. 15개월째 감소세다. 반도체 불황으로 관련 업종이 타격을 받고 있다. 전자부품 제조업의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지난달 4만6000명 줄었다. 올 들어 매달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기계장비 제조업도 5월 감소(-1000명)로 돌아섰고 지난달에도 1만4000명 줄었다. 반도체 제조업 피보험자 수 증가폭은 올 1월 7만1000명에서 지난달 4만700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도체는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라는 악재까지 겹쳐 이 영향이 본격화하면 고용 사정이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업 쪽에서도 급여 수준이 높은 금융·보험업 취업자는 올 들어 매달 마이너스다. 감소폭은 1월 1000명에서 지난달 5만1000명으로 커졌다. 정 과장은 “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을 중심으로 올해부터 점포 축소를 추진한 영향”이라며 “당분간 금융·보험업 취업자 감소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의 고용 증가는 노인, 단시간 근로, 재정일자리 중심의 증가여서 고용 시장 개선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민간의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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